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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May 15. 2024

붉은 장미의 건배

Ray & Monica's [en route]_155


어머니날, 멕시코 아들의 선물



우리 부부가 라파스에 머문 지 130일이 되었다. 이곳에서도 시간은 이렇듯 빠르게 우리의 매일을 관통했다.


"아~ 여기에 눌러 살고 싶어!"


아내는 이즘 이런 말을 무슨 노래의 가사처럼 흥얼거린다. 살면 살 수록 더 매력적인 이곳 라파스에 많은 날을 머물게 된 계기는 32살의 청년, 옥스나르(Oxnar)때문이다.


그는 작년 연말 우리가 짐을 꾸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집에 미련이 남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마당과 정원이 넓고 사막식물들이 가득하며 아침마다 새들이 노래를 들려 주는 그 집을 열흘 머물고 떠나기에는 아쉽다는 마음이 아내의 표정에 뭍어난 것을 옥스나르가 읽은 것이다. 그가 말했다.


"그럼 로스카보스(Los Cabos) 종주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세요. 제가 이 집에 숨겨진 한 공간을 수리해 놓을게요!"


그가 말한 공간은 우리가 묵고 있던 에어비앤비 영업공간이 아닌, 큰 마당을 돌아서 있는 별채였다. 그가 자신의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인테리어를 진행 중이었다.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의 최남단까지 종주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 공간은 우리가 불편 없이 머물 수 있을 만큼 리뉴얼이 끝나있었다. 그것이 이곳 라파스에 발목 잡힌 계기였다. 우리 부부가 그의 집으로 되돌아 온것은 공간의 쾌적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막내 또래의 오스나르는 눈이 깊고 말은 적었다. 그가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부터 하나하나 보여주는 그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곡절이 많았다. 그는 라파스를 10년 넘게 떠나 있었고 두 여자친구로부터 10살 딸을 비롯해 6살, 5살의 두 아들을 둔 아빠가 되었으며 그 아이들을 볼 수 없는 이유로 심리치료를 받을 만큼 우울한 상태였다.


그의 엄마는 3번 결혼하였고 그의 아버지는 다섯 번 결혼 하였으며 그는 한 살 때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 자랐고 때때로 작은 아버지 집으로 가서 살아야 했다. 그는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1살 시절부터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엄마품과 아빠의 보호에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정서는 지금까지 케렌시아(Querencia)를 경험해 보지 못한 체 아빠가 된 청년 같았다.


그의 공간에 머무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곳을 함께 방문했다. 엄마의 집과 아버지의 집, 자신의 유년 대부분을 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 사정이 생겨 옮겨 살았던 작은아버지 집, 대모의 가게까지... 그리고 그가 두 여자친구를 만나 자식을 낳고 키운 멕시칼리로 가서 그의 아이들과 아이 엄마를 만났다. 또한 가정을 꾸리기로 약속한 새로운 여자친구가 그를 떠났고 그 사건은 그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그녀를 단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그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장미꽃 한 다발과 편지를 들고 나선 그와 동행했다.


그런 대면들을 통해 지상에 선 나무 한 그루의 땅 아래 뿌리 상태가 어떤지를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인생이라는 그의 학예회 무대 관객석에 자신의 실수를 비롯한 어떤 모습의 공연이라도 박수를 쳐줄 자기만의 관객이 있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그의 무대 아래에서 그를 지켜보는 절대적인 그의 편 관객이 되기로했다. 우리는 그를 멕시코의 아들로 여겼고 그도 우리에게 부모의 예를 다했다.


그의 집에서 3개월을 지낸 어느 날 그가 우리가 모르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초대로 그의 식탁에서 식사를 함께하기로 한 날이었다. 아내는 조리를 돕는 동안 냉장고 속을 보게 되었다. 냉장실 안의 식품에는 호스텔의 냉장고처럼 각자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본채에서 각성바지 여동생과 같은 부엌을 사용하고 같은 샤워룸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그를 시련케한다는 것을 미쳐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떠날 결심을 굳혔다. 그도 여름방학 동안 멕시칼리의 아이들을 라파스로 데려와 함께 보낼 결심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방과 부엌을 그의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시설을 보완해야 했다.


우리가 떠나겠다는 마음을 전하자 이번에는 그가 서운해했다. 그는 우리가 6개월의 체류 만기일까지라도 라파스를 떠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 절충안이 월세로 얻은 현재의 집이다.


그는 방과 침대, 테이블 하나와 커피포트가 이 집의 모든 세간임을 알고 그의 집에서 책상과 의자는 물론 버너, 냄비, 접시까지 모두 가져다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내 앉은키 높이에 최적화된 책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아내는 간단한 식사도 조리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한 인연으로 얻게 된 멕시코 아들 덕분에 아들뿐만 아니라 멕시코와도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지난주 옥스나르의 초대로 우리가 살았던 그의 집을 방문했다. 거실에는 아이들을 맞아 함께 사용할 큰 테이블이 들어왔고 방에는 붙박이 장도 만들어 넣었다. 벽 액자에는 아내가 그려준 옥스나르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이제 김치 없이는 못 살겠어요!"라고 말하는 그를 위해 아내는 김치를 만들었고 그는 우리를 위해 소고기 토마토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날 그는 장미꽃 대신 붉은 로고 데카테(Tecate) 맥주 3캔을 가지고 왔다.


"이 데카테 레드를 붉은 장미라고 여겨주세요. 테카테 맥주는 스트롱맨의 상징인데 그중에서도 Blue보다 Red가 더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우리는 붉은 장미로 함께 건배했다. 멕시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강한 세상을 넘는 방법은 부드러움이다.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길 수 없단다."


아들은 어둠 속으로 떠나기 전에 선물이라고 종이를 내밀었다.


"매일 밤 침대로 가기 전에 독서하고 글을 써요."


부드러움과 유약함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두어 달 전에 그에게 스스로 약함을 다스려 강한 부드러움을 만드는 방법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권했다.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날의 선물로 가져온 것이다.


그의 글에는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가족의 중요성, 타인과의 공감 능력,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황을 긍정하면서 진취적이 자세를 잃지 않는 것, 규모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 등에 대한 사색이 담겼다. 


#아들 #라파스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멕시코 #세계일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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