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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동안의 결혼식

Ray & Monica's [en route]_214 | 소박한, 그러나

by mot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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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여러 날에 걸쳐서 업스테이트 뉴욕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하고 있다. 뉴욕시 북쪽의 광범위한 이 지역은 산과 들, 강과 호수의 풍부한 자연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빼어난 자연을 흠모한 사람들의 욕구는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서 가는 곳마다 작은 마을을 만들었고 그 마을마다에는 각각의 사연으로 풍요롭다. 현재 우리 부부가 머물고 있는 곳은 쿠퍼스타운 교외의 잘 관리된 캠핑장(쿠퍼스타운 섀도 브룩 캠프그라운드. Cooperstown Shadow Brook Campground)이다. 이 시골에서도 노동절(Labor Day : 9월 첫 번째 월요일)을 앞두고 모두들 부산하다. 미국에서 여름의 끝을 알리는 상징적인 이 날을 맞아 마지막 나들이로 집을 떠난 인구의 대이동에 각 도시는 그들을 유혹하는 행사가 곳곳에서 성대하기 때문이다. 이 캠핑장의 부부도 노동절 주말을 보내기로 한 캠퍼가족들을 위한 행사를 10개도 넘게 기획했다. 골동깃발그리기, 와인 및 버번 시음, 모닥불환담, 수프 끓이기 대회, 팝콘서트...


미국인들 중에 이 작은 쿠퍼스타운(Cooperstown)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 싶다. '미국야구명예의 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and Museum)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이유로 이 도시가 궁금했다. '모히칸족의 최후(The Last of the Mohicans)'를 쓴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다. 쿠퍼스타운은 그의 아버지가 세운 마을로 쿠퍼는 이곳에서 자라면서 체득한 이 지역과 자연이 고스란히 그의 소설에 반영되었다. 우리는 그 소설에 등장하는 옷세고 호(Otsego Lake)와 하이드홀(Hyde Hall)을 방문하고 또한 그의 유적을 찾아 도시를 걸었다. 그의 이름을 딴 페니모어 미술관(Fenimore Art Museum)의 위치와 건축과 전시는 얼마나 격조가 높은지...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정작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아들의 결혼식 날이기 때문이다.


#2

아들에게는 10여 년 전 외국에서 공부 중에 만난 연인이 있었다. 일편단심 변함없이 서로의 성장을 끌고 밀고 온 동지적 우애가 바탕이 된 두 사람이었다. 작년 3월, 엄마와 영국에서 합류한 아들은 결혼을 한다면 '효정'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은 아마 제가 귀국하는 내년이 좋겠다 싶습니다. 더 미루어지면 저나 효정이 나이가 많아져서 부모님께 손자손녀를 안기는 것도 좀 걱정이 되고요. 제가 영국으로 오기 전에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빠에 대해 어떤 감정이었을까, 에 대한 아빠의 생각을 제게 말씀해주셨잖아요. 저 또한 아빠가 12살에 할아버지를 떠나 홀로 도시에서의 생활을 이어가신 입장과 마음을 제가 유학중에 똑같이 느꼈었거든요."


두 딸이 결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아들의 이 말은 그의 형편을 차치물론하고 우리 부부를 구원하는 희망이었다. 아들조차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에서 대가 끊기고 만다. 그것은 저승에서 부모님을 뵐 명목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들의 결혼 결정은 나의 이 마음과는 관련이 크게 없는 것이었다. '아빠는 어떻게 살았지, 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어떻게 현명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에 관한 결정'이라고 했다.


"아빠가 할아버지의 생각을 이해했듯이 제가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시점이 있겠다 싶었어요. 그것이 결혼이다 싶은 거죠."


우리가 멕시코에 머물던 지난 5월, 아들은 전화로 결혼결심을 밝혔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제 메모장에 이렇게 그날이 기록되어있네요. '2023년 3월 27일 저녁 결혼결심을 발표한 날 : 영국 작은 집 주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미소가 평생 마음깊이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결혼결심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결혼식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말했다.


"저는 결혼식이라는 것을 통과의례로만 치르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모티프원으로 사람들을 불러서 제 고마움을 전하고 그곳에서 온전히 하루를 함께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24시간동안이요. 어느 한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선에서... 제가 결혼식을 웨딩홀에서 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시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웨딩홀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제가 하객으로서 그곳에 간 이유를 찾을 수 없었어요. 부모님하고 안부전화를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밥 먹었어?"하고 1분 안에 전화를 끊는 사람이 있고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맛은 어땠는지, 누구랑 먹었는지, 그분과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여쭈면서 안부전화를 30분 혹은 한 시간 동안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희의 결혼식은 1분 안에 끝내는 안부전화가 아니라 적어도 1시간 이상 전화기를 놓지 않는 안부전화가 되기를 원하는 거죠."


그는 기존 결혼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다. 결혼식 참석자를 부모님과 4촌 범위내의 꼭 참석을 원하시는 분, 축의금만 주러오는 사이가 아니라 24시간 정말 같이 있고 싶은 친구로 국한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 간 친밀하게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하객을 합해 30명이 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일절 축의금을 받지 않고 영대와 효정이가 소박한 저녁 한 끼 대접하는 결혼식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결혼식에 초대하지 못한 분이나 오시지 못한 분들은 신혼여행대신 전국을 돌면서 직접 찾아뵈고 혼인을 알리고 몇 시간, 혹은 하룻밤 함께 하면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듣겠다는 구상이었다.


그 결혼식이 한국시간 오늘(8월 31일 오후 5시 30분)이었다. 우리 부부는 우리에게 할애된 2명의 자리를 다른 분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이곳 시간 새벽 4시 30분, 쿠퍼스타운 캠프장의 텐트 속에서 휴대폰 랜턴으로 불을 밝히고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3


아래는 통신 불안정을 염두에 두고 저희의 두 딸에게 대독을 부탁했던 '아들 영대에게, 그리고 새롭게 우리의 딸이 된 효정에게 전하는 나와 아내의 메시지'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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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의 세상 첫울음소리를 기억한다.

치한으로부터 누나를 지켜준 중학생 네 용기를 기억한다.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 하늘을 좀 올려다보라, 고 보내준 메시지를 기억한다.

친구에게 슛을 넣도록 어시스트한 것에 더 기뻐하던 날을 기억한다.

훈련에 뒤쳐지는 동료를 네 짝으로 삼아 함께 뛴 신병훈련소의 날들을 기억한다.

할아버지를 엎어준 날을 기억한다.

아버지에게 술을 사준 날을 기억한다.

엄마를 안아준 날을 기억한다.

영국에서의 긴 외로움을 기억한다.

칸영화제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그 외로움이었음을 기억한다.

나는 묵묵히 하늘과 땅을 섬기는 농부, 아버지를 가슴속에 걸어두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오늘 너무나 행복하게도

다시 각오를 새롭게 한다.

내 아들 같은 사람이 되기를...

2024년 8월 31일

_행복한 아들의 결혼식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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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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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아!

효정이를 어떻게 부를지를 고민했었다. ‘며늘아기’라고 불러도 보았다만 어쩐지 내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구나.

나는 너를 딸로 생각하니 우선은 '나리', '주리'처럼 '효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너를 진실로 사랑하는 내 마음이 담긴 것 같구나.

두어 달 전 멕시코에서 사돈어른, 사부인과 영상통화로 인사를 나눈 뒤부터는 불쑥 눈물이 나곤 한단다.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기꺼이 양해를 해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감정은 혼례의 현장에서 너와 아들을 안아주지 못한다는 것이 흡족하지 않은 것 같구나.

남편과 내가 '10년 세상순례 수행'에 뜻을 세우고 나라밖으로 나온 그 결행을 일관되게 이어가는 것이 우리에게도, 너희들에게도 혼인에 참석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자꾸 '세운 뜻'의 일관된 실천의 단호함보다 그 현장에서 너희를 안을 수 있는 따뜻함으로 기우는 구나.

우리 부부가 살아온 방식이 형식에 연연하거나 명분을 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남편 몰래 눈물을 훔치며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영대를 통해 '익사이팅한 탐험가로 살아온 엄마ᐧ아빠만큼이나 효정이 또한 모험가'라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다.

사실 '결혼은 누구에게나 새로운 미답지'란다. 그러니 가장 매력적인 모험의 영역인 셈이다.

우리는 45년간의 동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일이 미답지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를 탐험중이기도 하지만 결혼을 탐험중이기도하다.

효정아!

너는 오늘부터 나의 동료이다.

우리 함께 서로의 모험을 격려하며 미답지의 탐험 경험을 나누자구나!

지금 우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머물며 자연과 자급자족의 삶을 경험했던 월든 호수를 지척에 두고 있다.

이어서 우리 삶의 생활주기에 지침이 되었던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말년 30년을 보낸 Good life center로 갈 것이다.

세상의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일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효정이와 영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스승 삼고 현상들에 궁금해 하며 그 궁금증을 푸는 일로 네 모든 삶을 관통하면 좋겠구나.

내가 어디에 있건 너를 향한 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사랑한다. 효정아!

우리가 어디에 있건 너희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2024년 8월 31일

_나의 포옹을 이 편지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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