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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을 이사 가게 만드는 잃어버린 바늘

증오와 사랑은 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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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을 이사 가게 만드는 잃어버린 바늘

INTO THE WEST_32 | 증오와 사랑은 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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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저희 원정대는 아침 예카테린부르크를 출발하여 894km를 13시간 58분간 달려 모스크바에서 우파까지 이어지는 Voga Hwy, M7의 모스크바행 연도 카잔 외곽에 머물고 있습니다.


예정되었던 일정은 튜멘에서 520km 쯤에 있는 첼랴빈스크에서 1박을 하고 이틀에 걸쳐 이곳에 도착하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의 숙박을 하루 더 늘려 좀 더 깊이 모스크바를 누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대장의 제안에 모든 대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하루를 단축한 것입니다. 문제는 휴가에 주말까지 겹쳐 빈방을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M7의 도로변, 운전자들을 위한 숙소에서 15인만 수용 가능한 공간을 얻었습니다.


안내와 통역을 맡은 분을 포함 총 31명 중에서 여성, 남성중 고령이거나 병약한 사람 순으로 숙소를 배정했습니다. 나머지 남성 대원들은 차박 혹은 각자의 방식으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씨 좋은 모텔 주인의 배려로 숙소 현관 조명이 있는 곳에서 머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자주 술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 출입을 하면서 말을 걸어오곤 하지만 바깥과 안 그 사이의 시간을 경험하는 기회입니다.


아침, 한 대원이 5분을 지각하면 모두에게 150분의 시간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강조해온 대원이 일어서면서 아침 식사 중인 대원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7시 30분까지 모여야 되니까 모두들 서둘러요."


내 앞의 대원이 내게 말했습니다.


"어제저녁에 7시 50분까지 로비로 집합하라고 했는데 20분은 어디로 달아난 거지? 5분간의 커피 한 잔 시간이 방해받는 것은 내 오늘 하루를 모두 도둑맞는 일이에요. 제목을 잊은 영화에서 전쟁터의 한 병사가 폭격을 피해 나가다가 커피 메이커 챙기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가지러 장대비를 뚫고 되돌아가죠. 결국 그는 죽고 말지만... 그 영화를 볼 때 40년 뒤 오늘 그 장면이 기억 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여정에 오른 지 한 달이 가까워지자 각자 각기 다른 이유로 날카로워졌음이 느껴집니다. 한 달이면 서로의 바닥을 알만한 시간이죠. 어쩌면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대원이 말했습니다.


"자살관광버스라는 일본 영화에서 한 등장인물은 죽으로 가는 입장에서도 음식점에서 맛이 없다고 투덜대죠."


하니 우리는 더 잘 살기 위한 여정인 만큼 투덜대는 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예카테린부르크 교외의 고갯마루 동서양 경계비에서 잠시 멈추어 동양에서 서양,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좀 들뜬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카잔으로 가는 3가지 길을 제시했습니다. 북부 페름을 거쳐서 가는 가장 먼 길과 남쪽의 우파를 거쳐서 가는 먼 길, 그리고 그 중앙을 수평으로 가는 제일 짧은 길...


우리는 세 번째 노선을 택해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여러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었습니다. 잦은 신호 대기에 차량 한 대가 본대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무전기 도달 범위를 벗어나 전화 통화를 통해 독자적인 방법으로 카잔을 향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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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길을 벗어나자 길은 숲으로 이어졌습니다. 숲길은 더 가팔라지고 포장은 그 언저리까지였습니다. 2시간쯤의 비포장 긴 숲길을 달렸습니다. 우랄산맥을 넘고 있는 것입니다. 감성이 풍부한 한 대원이 무전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카자흐스탄에서 북극해까지 2,500km를 종단하는 우랄산맥 중심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평생을 걸쳐 처음 있는 일이며 마지막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호 차부터 차례로 각자의 느낌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1호 차에서 무전기를 잡았습니다.


"우리는 오프로드를 즐기기 위해 이번 여정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산중에서 자동차의 기계 고장이라도 나면 우리 모두가 발목이 잡힙니다. 특히 5호 차의 경우는 순전히 전자 장비입니다. 오프로드에서 돌이라도 튀어 차량 하체에 치명상을 입으면 여기서는 부리가 불가능합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우랄산맥을 관통하는 일기일회의 감격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찬물에 젖은 마음으로 산맥을 벗어났을 때 내가 동승한 7호 차가 시골길 풍경 속을 좀 느리게 달리다가 본진에서 멀어졌습니다.


시골길에서 인터넷도 통신도 연결이 되지 않아 각자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휘자뿐만 아니라 통역자까지 자원을 독점한 본진에서 길 잃은 양을 챙기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졌습니다. 본진을 따라잡고자 한 노력이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순간 비로소 모두가 여유를 찾은 듯했습니다.


"그동안 앞 차 꽁무니만 보고 달리다가 시원하게 터인 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더 좋아요."

"그들은 다른 길로 갔으니 운하를 건너는 경험은 우리뿐일걸요."

"도로변에서 트럭 기사에게 가스버너 빌려서 라면 끓어먹는 기분을 본진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내일부터는 각자 알아서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합시다."


이런 각별한 기분도 4시간쯤 홀로 달리자 시들해졌습니다.


"본진에 합류하면 틀림없이 안 따라붙었다고 꾸중할 텐데..."

"그러면 '미안합니다.'라고만 하고... 그래도 계속 뭐라면 목소리는 높이지 말고 '길 잃은 대원을 안 챙긴 너희들은 잘했나?'라고 한 번 일깨워줍시다."

"라면 끓여먹은 얘기는 하지 맙시다. 따로 가자는 말도..."


날짜변경선을 지나고 두어 시간을 더 달린 다음 드디어 통신이 가능해졌습니다.


"1호 차입니다. 우리는 164km 남았습니다."

"8호 차, 131km 남았습니다."

"7호 차, 102km 전방, 주유소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는 1시간쯤 뒤, 102km 전방 주유소에서 허그로 재회의 감격을 나누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누구를 타박하거나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단장이 숙박자를 발표했습니다.


"오늘 숙박. 2 한** 김** 2 남** 강** 2 허** 이** 2 박** 신** 2 한** 강** 2 홍** 조** 1 김** 1 박** 1 이** <계 15명>


준비된 방은 15명 분임으로 나머지 16명은 각자의 방식대로 밤을 나야 함에도 누구 하나 불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우랄산맥에서 무전기를 잡았던 1호 차의 그가 '공지'를 올렸습니다.


"공지 | 내일은 일찍 출발하겠습니다. 6시부터 식사하시고, 7시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목적지 니즈니노보고르드까지는 약 450km입니다. 오늘 밤은 기억에 남을 밤 되리라 확신합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로 사람들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 정작 사르트르는 희곡 ‘출구 없는 방’의 대사,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는 말이 곡해되었다고 그의 강연에서 밝혔습니다. '적지않은 세상 사람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그것은 타인들의 판단과 평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통영이 고향인 대원이 말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집에서 바늘을 잃어버리면 이사를 간다 하네요."


나는 안과 밖의 중간에서 카잔의 먼동은 새벽 3시쯤에 시작되어 3시 30분에 해가 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불어 한뎃잠을 잔 사람들이 추위를 이기는 갖가지 방법들을 지켜보았습니다. 맥주 서너 병으로 속을 예열하고 차에 오른 사람, 침낭을 뒤집어쓴 사람, 차의 시동을 건 사람, 내 옆의 다른 소파에서 잠을 청한 사람, 비어있는 이슬람교 기도방을 발견한 사람, 1인실에 묵고 있는 동료의 방으로 침낭을 들고 숨어든 사람...


안과 밖의 중간을 택한 나를 위해 한 대원은 바깥 테이블을 옮겨 책상으로 만들어주었고 한 대원을 점퍼를 벗어 내 무릎을 덮어주었습니다.


어젯밤 식당에서 실수로 자신의 휴대폰 바탕화면의 누드 여성 사진을 보여주었던 트럭 기사는 보드카를 마시지 않겠냐고 나를 찾아왔으며 경비실 경비원은 전자기기 충전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은 발견되지 않은 채 다다미에 곧추서서 집주인을 이사 가게 만드는 잃어버린 바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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