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즈니노브고로드 크렘린 언덕의 일몰
이성은 결정적인 순간에 후회하게 만들고...
INTO THE WEST_33 | 니즈니노브고로드 크렘린 언덕의 일몰
아내와 함께 '2022 유라시아평화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어제는 카잔에서 20톤 트럭들의 주차장에서 차박을 했지만 오늘은 니즈니노브고로드 레닌 광장 동상Lenin Square Statue 옆 4성급 마린스 파크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호텔 발코니에서 손을 뻗으면 레닌의 손을 맞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깝습니다.
이쪽의 광장과 볼가강 건너 석양에 반짝이는 크렘린 언덕, 땅에까지 금방 푸른 물을 들일 것 같은 청명한 하늘... 막심 고리키가 연명을 위해 접시를 닦다가도 창밖을 보았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분투의 마음이었을 지, 이곳의 시간을 끝내고 저 청명한 세계로 뛰어 들고 싶었을지... 이 호텔의 장점은 무엇보다 창밖으로 차안과 피안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전쟁 아니면 전쟁을 준비하는 시간 같습니다.
러시아인들이 신성한 강으로 여기는 볼가 강변의 크렘린은 과거의 전쟁을, 어제 밤 이슬을 피할 방을 구하지 못했을 때 대원들은 현재의 전쟁을 치르야 했습니다. 개인들은 갖가지 방식으로 한기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어떤 이는 여자대원들의 방으로 초대받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어떤 대원은 주인의 순찰에 샤워룸에 숨었다가 발각되어 한데로 쫓겨났고 어떤 대원은 커튼 뒤로 숨어 침낭 하나와 지붕 있는 바닥에서 안락했습니다. 집의 구조를 미리 파악해둔 대원은 이슬람의 기도방을 찾아 양탄자 위에서 단잠을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노숙과 4성급 호텔의 반전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면서 내일 눈을 떨 수 있을까요. 매일이 기대의 배반이더라도...
룸에 캐리어를 올려두고 저희 부부는 버스를 타고 호텔에서 마주 보이는 볼가강 너머 성채도시로 향했습니다. 만원 버스의 할머니 차장이 디지털 영수증 발급기를 들고 능숙하게 사람들의 차비를 정산해 주었습니다.
호텔 리셉션 직원이 알려준 대로 발샤야 빠끄롭스까야 입구에서 버스를 내렸습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이 거리에서 일요일을 보내야 하는 것처럼 활력으로 넘쳤습니다. 넓은 대로변의 한 공간을 점유한 뮤지션, 마술사들이 각자의 재능을 뽐내고 중심 거리에서 한걸음 비켜난 벼룩시장에서는 오랜 시간에서 살아남은 사물들이 허리 굽혀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살아남는 의욕에 대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천천히 걸으며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이 거리의 풍요들을 누렸습니다. 마음에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들꽃 두어 다발을 두고 팔고 계신 할머니를 지나친 것입니다. 자신의 포만감을 위해 빵을 사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꽃을 사기를 즐기는 러시아의 남자가 되어보고 싶은 끌림은 여행자에게 그 꽃다발이 또다시 짐이 되는 이성이 발동해 버린 것입니다. 이성이 사랑을 그르친 것이 몇 번인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긴 발샤야 빠끄롭스까야 거리를 벗어나 부인의 노동과 아이들의 천진함이 있는 삶을 지나 크렘린 언덕을 향해 걸었습니다.
볼가강 너머로 내가 떠나온 레닌광장이 차안에 존재했습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오카강이 합수하여 만든 넓은 수면에 가득 석양이 내려앉았습니다.
하루를 끝내는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저희 부부는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이 황혼 같은 아름다운 인생의 일몰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크렘린 언덕의 나무 벤치 위에서의 시간 동안 내면을 가득 채운 것은 '감사'였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었음을 생각하니 감사가 흘러넘쳤습니다.
한국으로부터 지인의 메시지가 그것의 구체적인 한 장명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랑의 순례길... 촌장님의 부부를 지켜보면서 이 모든 은총이 하루하루 빛난다면 그건 순전히 사모님 덕분이로다. 나를 성장시키고 대접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허용하고 지지하셨지요. 일을 하면서도 함께 세 부모님을 모시면서 떳떳하게 사신 점! 배우자가 지향하는 바가 같고 함께 떠나는 모험과 순례를 한다는 것. 부디 날마다 나눠먹고 마시고 예측할 수없는 모험에 함께 대처하면서 여행의 목적에 당도하면 '아! 난 참 좋은 짝과 사랑의 순례를 마쳤구나.' 말할 수 있으시길..."
메시지를 읽자마자 다시 후회합니다. 발샤야 빠끄롭스까야 거리 할머님의 들꽃 한 묶음을 샀어야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늘 내 발목을 잡는 이성이 수양의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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