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28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이제 안티구아를 떠날 때이다. 작년 10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과테말라 안티구아로 왔다. 중미도 처음이고 과테말라도 처음이었다. 이곳에 대해 가장 많이 들어온 밀들은 치안 불안이었다. 과테말라시티의 라 아우로라 국제공항에서 안티구아까지 40여 km, 택시 기사는 우버에 나오는 요금의 2배를 불렀다. 금요일의 교통상황이 최악이라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 시간이면 충분할 거리를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2시간 30분이 지난 뒤에야 숙소에 당도할 수 있었다.
"이곳에 며칠이나 있을 수 있을까?" 싶었던 곳에서 178일이나 흘렀지만 "안 떠날 수는 있는 법은 없을까?"를 궁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런 연유로 4월 초로 예정되었던 출발이 20일이나 미루어졌다.
빠르고 효율적인 뉴욕의 기억은 멀어지고 느리고 인간적인 마야인들의 발걸음에 마음이 빼앗겨버렸다. 300년 전의 모습으로 박제된 도시, 안티구아는 무엇이 더 중하고 아름다운지를 아는 사람들의 도시였다.
북미와 중미의 경계쯤으로 여겨지는 안티구아에서 기회보다 기도, 경쟁보다 나눔에 익숙한 사람들의 일원이 되고 보니 ‘성공’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되었다.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성주간과 부활절도 지났으니 이제 다시 주저앉을 핑계를 찾기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더 적게 소유하고, 더 많이 경험하는 삶’의 실행을 위해 다시 발을 뗀다.
#2
아내는 일주일에 세 번 열리는 장날의 아침장을 찾았다. 정육점에서 어떤 고기를 구할 수 있는지, 어떤 형태로 잘라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떠나기 전, 한지붕 아래에서 2달 가까운 시간을 보낸 숙소 사람들에게 한국 숯불갈비를 대접하기로 한 뒤였다. 15명분의 갈비를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라 걱정이 적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와야 좋은 부위의 고기를 살 수 있다는 귀띔을 받고 파티 하루 전날 아침에 약속한 정육점으로 갔다. 소갈비로 끊은 것을 월터가 동행해 운반을 도와주었다.
마늘, 양파, 파인애플 등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미리 양념하는 법을 연습한 아내가 갈비 15파운드를 재웠다.
숯불은 알렉스가 맡아주었다. 꽃을 좋아하는 파멜라 할머니께서 테이블에 꽃을 놓아 장식하고 후식 파이까지 구어 주셨다. 데이비드는 맥주를 준비해 주었다.
정든 식구들이 모이고 일주일에 한번 쉬는 휴일날임에도 크리스티나는 아들과 두 딸과 함께 기꺼이 와주었다. 피아니스트 넬슨까지 와서 코리언 바비큐 파티는 더욱 풍성해졌다.
준비는 함께 했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아내와 내가 받았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숙소의 사람들은 모두 장기 체류자이긴 하지만 결국은 떠날 사람들이다. 언제 어디로 떠날지를 물으면 그 대답은 한결같다.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정처 없는 사람들에게 언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는 것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도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우리의 대답도 같다.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