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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주르, 시애틀!

Ray & Monica's [en route]_404

by motif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시간,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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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은퇴는 세상의 속도를 실시간으로 따라잡을 필요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행이라는 결핍의 환경 속으로 들어가 속도 대신 스며듦을 택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빗겨 서서 내 마음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인다.

그동안 속도 때문에 간과했던 관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시간을 누린다. 그러므로 은퇴는 어떤 결핍을 회복하는 삶의 장르이기도 하다.

느리게 걸으면 내가 그동안 놓쳤던 아름다운 디테일들이 하나하나 볼 수 있는 가슴의 눈이 떠진다. 그러므로 은퇴는 아름다운 시작이기도 하다.

현란함에 길들여진 눈이 아니라 낙엽으로 덮인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갖게 되는 시간. 그것이 은퇴이다.

미디어가 전하지 못한 사소한 것의 건강함을 발견하는 시간이면서 내가 아니면 누두도 들을 수 없는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애틀에는 어떤 속삭임이 낙엽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와 동행하는 배낭 속에는 두 개의 봉투가 들어있다. 하나는 물리적인 나를 증명하는 서류를 담은 것이고 하나는 외로움을 담은 것이다. 하나는 국경을 넘는데 필요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에 듣는 형체 없는 이어폰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한국을 떠나온 이유 중의 하나는 과거의 나를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가 시애틀로 가는 이유는 시애틀이 내가 발견하지 못한 나를 더 잘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 것이다. 이곳 밴쿠버가 그랬듯...


#2


오늘 아침에는 존(John) 어르신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어르신이 떠나온 시애틀의 추억을 들었다.

존은 영국의 더럼 대학교(Durham University)를 졸업하고 잠시 런던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대부분의 삶을 영국 밖에서 살고 있다.

79년의 삶 중 시애틀에서 31년을 살았으므로 스스로를 시애틀라이트(Seattleite 시애틀 출신 사람)라고 할만하다. 먼저 밴드의 드럼 연주자로 7년쯤을 살았다. 공연장을 비롯해 카페와 호텔 등 시애틀 음악 씬의 주역으로 살았고 나머지 25년쯤은 유덥(u-dub : 워싱턴 대학교(UW, University of Washington)의 시애틀 캠퍼스)에서 교육학 석사를 공부하고 고등학교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또한 UW에서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았다.

지도를 펴고 우리가 좋아할 만한 지역을 설명하면서 발라드(Ballard)로 넘어갔다.

"스칸디나비아 이민자들의 정착지였죠. 발라드 애비뉴 랜드마크 지구(Ballard Avenue Landmark District)도 걸어볼 만하고 발라드 록스(Ballard (Hiram M. Chittenden) Locks)에는 연어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한 어도(Ballard Locks Fish Ladder)가 있어서 연어의 이동을 관찰할 수 있죠."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어부가 새먼 베이(Salmon Bay) 옆에서 치누크 연어(Chinook Salmon)를 부화시킨 다음 치어를 큰 관을 통해서 바다로 방류를 했대요. 4년 뒤에 돌아온 큰 연어가 물이 흐르지 않는 관 아래에서 관으로 들어가려고 모여있더라는군요. ㅎㅎ"

연어가 후각과 지구 자기장 감지 능력을 통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습성을 빗대어 지어낸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공항(King County International Airport)을 설명하는 중에 개인 비행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비행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비행 훈련을 받고 여러 번 단독 비행을 했어요. 한번은 벨링햄(Bellingham)까지 비행하고 공항으로 돌아왔는데 멀리서 거대한 연기가 치솟는 것이 보여어요. 공항으로부터 직선거리로 150km쯤 떨어진 세인트 헬렌스 산(Mount St. Helens)이었어요. 관제사(Air Traffic Controller)에게 착륙을 해도 좋겠느냐고 무전을 했더니 서둘러 착륙하라는 거예요. 착륙을 하고 보니 모든 비행기들이 이륙 중인 거예요. 마치 2차 세계대전의 전투비행기들이 출격하듯이... 그들은 그 산의 분화를 보기 위해 모두 떠난 거였어요."

존 어르신은 세인트 헬렌스 화산 폭발을 하늘에서 보지 못하고 착륙한 것을 지금도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애틀의 구석구석을 오갔던 존의 이야기로 커피가 식는 줄 몰랐다. 존과의 커피 시간이 끝났을 때, 나는 이미 시애틀을 걷고 있었다.


*사진설명

시종 극진한 폴(Paul Halley)과 염은주 선생님 마음과의 동행이었던 밴쿠버 삶의 데이트


●나는 왜 도요새의 삶을 택했는가?

https://blog.naver.com/motif_1/223207201293

●낯선 곳의 산책자(Flâneur)로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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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스 선생님께서 주신 경책의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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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배우는 삶과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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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수 부부가 사는 법_2 | Creative Class

https://blog.naver.com/motif_1/221170908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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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쥬르시애틀 #시애틀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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