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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언 커네이디언의 리얼 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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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if

마이클의 '인문학에 버물린 캐나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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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밴쿠버에서의 3개월은 참으로 특별했다. 매일 우리 부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어떤 비밀의 파라다이스에 초대받은 것 같았다.

걷기명상으로, 마늘밭 철학학당으로, 커뮤니티 미팅으로, 와인파티로, 가정의 식탁으로, 레스토랑의 대화로 초대받았다. 자연의 비경 속 등정하기에, 트레일 트레킹에, 장대한 자전거 루트의 자전거 타기에 우리를 초대했다. 두 번이나 영양죽을 쑤어오신 정성을 경험하기도 했다. 밴쿠버 도심의 가장 특별한 구역을 함께 걸어주었고 정신세계를 고양하는 서점으로 안내해 주며 영감 어린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깨어나게 했다. 어떤 분은 수시로 연락을 주셔서 차가 준비되었으니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곳 중,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를 물었다.

마이클 선생님은 이런 마음을 내주신 분 중의 한 분이다. 어느 날 그분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댁을 방문했다. 피자를 구워주기 위해서였다. 피자를 만들기 전에 한 시간은 삶을 나누는 얘기에 할애했다. 마치 피자의 기본인 도우 반죽을 발효하는 시간처럼...

그가 가지고 온 큰 가방 안에는 피자를 만드는 모든 도구와 재료들이 들어있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여러 치즈와 팔팔한 시금치까지. 가방을 열고 그의 손이 마법을 부렸다. 큰 도마에 오른 도우를 밀고 그 위에 온갖 것들을 쑥쑥 얹고 뿌렸다. 그리고 오븐에 넣어 온도를 세팅했다.

오븐에서 바로 나온 두 가지의 피자를 접시에 담아 앞에 놓았다. 익혔지만 마치 텃밭의 채마를 입에 넣는 것처럼 싱싱했다. 내 혀가 이렇게 말했다. "아, 이것이 20년 프로 세프의 마술이구나!" 나는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는 내가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했다.


#2


지난주에 마이클 선생님이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공연을 위해 한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도착 후 공연 전에 2박 3일간의 짬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즉시 그 2박 3일을 모티프원으로 초대했다. 마이클 선생님은 밴쿠버에서도 일상을 명상과 수행으로 풀어내시는 분이었고 창의적 삶에 대한 욕구를 가진 분이셨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모티프원의 서재는 내가 지난 18년간 세계에서 오는 여행자들을 맞아 매일 밤, 서로의 가슴속 이야기를 나누는 '여행자의 하룻밤'이 진행되던 곳이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밤을 '글로벌 인생학교'라고 불렀다.

내가 떠난 뒤, 그곳을 책임진 첫째 딸 나리는 그 기능을 좀 더 짜임새 있게 구성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가 지도하는 명상과 요가, 해설이 있는 음악감상, 마음을 데우는 코바늘 뜨개, 프랑스 문화산책 등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방문객이 함께하는 무료 프로그램이다. 내가 진행해오던 방식과는 달리 딸은 그 프로그램에 강사를 모시는 방식이므로 미리 계획하고 신청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마이클 선생님의 방문에서는 그 규칙을 깨고 즉흥적 기획을 발휘했다. 교민 마이클 선생님을 호스트로 모시고 수십 년간 몸으로 살아낸 '코리언 커네이디언의 리얼 밴쿠버(Korean Canadian's Real Vancouver)'를 듣는 시간이었다.

방금 서재에서의 '캐나다의 밤' 얘기가 끝났다는 소식을 받았다. 우연히 마이클 선생님과 같은 날에 모티프원과 프레농에 오신 분들은 마이클 선생님의 따끈따끈한 캐나다 삶의 이야기를 인문학에 버물린 이야기에 밤이 깊어지는 것도 잊었다고 한다.

그제 캐나다 밴쿠버에서 저희와 함께 피자로 삶을 굽던 분이 오늘은 태평양 너머의 한국 헤이리에서 캐나다의 삶을 얘기하는 인연이라니...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된 지구라는 공동체의 일원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유대는 신성하다"라고 썼다. 마이클 선생님과 밤을 함께한 신성한 유대를 통해 더 조화로운 전체의 일원이 되는 시간이었음을 물론, 건강한 독립적 자아로 한 발 더 나아가는 시간이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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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유대 #모티프원 #헤이리 #밴쿠버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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