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408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어제(2025년 10월 21일), 밴쿠버를 떠나 시애틀에 당도했다.
시애틀로 오는 길은 가을로 가득했다. 밴쿠버를 벗어나자 수확이 끝난 느른 들판의 블루베리 잎은 붉게 푸른 하늘과 공명했다.
미국 측의 Interstate 5(I‑5)를 따라내려오는 중에는 회색빛 하늘이 걷히고 여름 같은 청명한 하늘이 계속되었다. 단풍은 그 하늘을 푸른 카펫 삼아 더욱 노랗고 붉게 빛났다.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Range)에 우뚝한 베이커 산(Mount Baker)과 쓰리 핑거스(Three Fingers)산의 만년설은 노란 단풍 뒤에서 홀로 계절을 잊었다.
고속도로와 산맥 사이를 나란히 달리는 화물장대열차는 산맥만큼이나 긴듯싶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서부는 우리를 따라오며 절정의 가을을 선물했다.
그러나 미국의 CBP Officer는 낭만적인 가을과는 다른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2
밴쿠버 Pacific Central Station(밴쿠버 기차역과 함께 운영되는 인터시티 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한 FlixBus는 한 시간 반 만에 블레인(Blaine)의 Pacific Highway 국경 검문소(Pacific Highway Port of Entry)에 도착했다.
짐을 모두 챙겨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2명의 입국심사관이 있는 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버스 승객이 20여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입국 심사가 쉬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는 내 앞의 큰 배낭을 멘 청년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심사관은 그와 5분쯤 질문을 주고받고는 심사대 의자에서 일어나 뒤쪽 Secondary Inspection Room (2차 심사실)의 비공개 공간으로 그를 데려갔다. 다시 5분쯤 뒤에 나오면서 출구에서 승객들의 심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버스기사를 향해 말했다.
"승객 한 명은 당신 버스에 탑승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심사관이 우리 부부의 담당이 되지 않기 바랐던 기대도 어긋났다.
우리는 이미 I-94(출입국증명서)를 미국 세관 및 국경보호청(CBP) 웹사이트에서 신청하고 기존의 6달러에서 9월 30일부터 30달러로 오른 수수료까지 지불했으므로 수속도 좀 더 수월할 것이라고 여겼다. 이 기대도 깨졌다.
우리 부부는 미국 입국에서 심사관으로부터 5가지 이상의 관례적인 질문외에는 받아본 적이 없다. 이번에는 달랐다. 질문은 끝이 나지 않을 듯 이어졌다.
미국 입국전의 나라별 루트와 미국에서의 이동 경로, 통장 잔고, 한국으로는 왜 돌아가지 않는지 등의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CBP 웹사이트에서 I-94를 신청하면서 직접 확인한 우리 부부의 지난 2년간 10여 건의 출입기록에 나타난 국경 출입국 지점을 나타내는 코드(LOS, SYS, CAL, PDN, ATL, SAJ, Unavilable, PHY... )를 보면서 심사관이 의심할 만하다고 추측했던 그 합리적인 의심을 심사관은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San Ysidro, Calexico, El Paso, 푸에르토리코 San Juan, 식별불가 등으로 나타나는, 멕시코와의 국경도시, 중미와 카리브해 등에서의 잦은 출입은 이민 정책이 더욱 강경해지고 범죄 이력이 있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입장을 제일선에서 집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사실에만 입각한 답변에 진실성을 인정해 주었다. 그는 Secondary Inspection Room에서 이루어졌을 만한 질문과 시간을 자신의 위치에서 마무리했고 나의 10여 가지가 넘는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해주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해 주었다.
우리는 운전기사가 기다린 마지막 승객이 되었다. 우리가 승차하고 막 버스가 출발하려고 할 때 Secondary Inspection Room으로 들어갔던 청년의 외침이 들렸다. 그도 입국 자격을 인증받고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우리가 버스를 지체시키는 동안 나머지 승객들에게는 미안했지만 그 청년에게는 밴쿠버로 되돌아가지 않게 한 은인이 되었다.
#미국육로입국 #국경검문소 #밴쿠버 #시애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