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440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시애틀의 겨울을 살지 않았다면 자칫 북서부태평양 지역(Pacific Northwest, PNW)의 찬란한 여름만 기억할 뻔했다.
PNW는 태평양과 로키산맥 사이에 위치한 북미의 한 지리·문화권으로 미국 북서부와 캐나다 서부를 포함한다. 미국 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 3개 주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를 더해 하나의 문화권으로 보기도 한다.
PNW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여느 지역 시골 사람들보다 순하고 차분한 성격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드러내야 할 경우에는 우회적이고 공손한 방식을 택한다. 좀처럼 ‘우리가 최고’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놓고 구분하지 않지만 은근한 자부심이 심중에 기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Are you a local?"이라고 물으면 진짜 토박이는 얼굴이 화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날 알아보았지?" 하는 표정이다. 이런 자부심이 "시애틀에서 외지인은 영영 진짜 로컬이 되기 어렵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표정까지 숨겨지지 않아도 이들이 밉지가 않다. 이들에게 가식이나 차별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성품의 기저에 여름의 햇빛과 긴 낮뿐 아니라 겨울의 비와 긴 밤을 의심한다. 태양과 비 외에도 태평양의 사나움, 퓨젯 사운드의 온순함,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Range)의 변화무상이 버물려져 지금의 도시 속 자연인, 시애틀라이트(Seattleite)의 7할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나는 영혼의 7할은 여전히 자연이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2
어제(12월 27일)는 오랜만에 햇살이 났다. 집 밖으로 나갔다.
방학 중인 워싱턴 대학교의 고요한 교정을 종단하고 ASUW Shell House에서 UW 조정팀의 연습을 멈춘 Union Bay를 독차지하고 있는 겨울 철새들의 군집에 마음을 뺏겼다. 배를 돌보고 있는 UW Sailing Club의 학생과 말을 섞고 요트 한대의 긴 돛대(마스트)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Montlake Bridge가 양쪽으로 갈라져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보았다.
유니언만 가의 섬들을 다리로 이은 아버리텀 워터프런트 트레일(Arboretum Waterfront Trail)과 포스터 포인트 트레일(Foster Point Trail)을 걸어 워싱턴 파크 아버리텀(Washington Park Arboretum)로 건넜다. 거대한 도시공원의 많은 갈래 길들을 걸으며 수목과 조각들을 살폈다. 마침내 공원의 남단, 퍼시픽 코넥션스 가든스(Pacific Connections Gardens)에 닿았을 때는 이미 해가 졌다.
시애틀에는 대략 400곳 안팎의 공원·공원시설이 있다고 한다. 대학 정원, 커뮤니티 정원, 해변 트레일과 거대 수목원... 돌이켜보니 하루 종일 도시 속 자연을 걸었다.
내 몸의 살과 뼈는 백두대간 민주지산 능선의 삼도봉 자락의 흙과 공기로 이루어졌지만 시애틀 자연이 내 세포의 일부로 편입되었지 싶다. 희로애락의 과정을 사는 것은 모두가 동일하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다를 뿐이다. 내가 닮고 싶은 시애틀라이트의 은은한 성품도 나의 일부가 되었기를...
#시애틀 #세계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