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_78 | 펫 프렌들리 디자인
유럽을 여행 중에 반려동물 사랑에 대한 수많은 장면들을 만났다. 집에 홀로 둘 수 없어서, 혹은 홀로 나들이하기가 미안해서 각양각색의 케이지에 담아 함께 나들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반려동물은 이미 동물의 직위를 넘어 자식의 위치에 있음을 느낀다. 케이지 속에서 주인과 함께 나들이하는 것이 동물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문제인지는 차치하고...
미국에서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매일 아침 유모차에 반려견을 태우고 공원을 산책하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반려견의 역할을 짐작한다. 이 할머니에게 자식은 어머니와 시간을 함께하기에는 너무 바쁘거나 남편은 서둘러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났을 지도 모르겠다. 이 어른의 홀로인 시간을 지켜주는 반려견을 돌보는 모습에서 손주를 대하는 정성을 느낀다.
우리는 이미 동물에게 정서적, 사회적, 치료적, 교육적 역할을 맡기고 있다. 이렇듯 사람이, 가족이 할 수 없는 위안과 안심의 역할을 동물에게 구하는 일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사람의 배려는 어떤 지가 항상 숙제처럼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 브라이턴에서 묵은 숙소의 주인이 동물과 관계 맺고 있는 방식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뒤쪽 왼발이 부상당한 개 한 마리를 집에 들여 돌보고 있었으며 길냥이 한 마리는 마치 그 집에 자신 몫의 권리를 가진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낮에 그녀의 정원 조각물들을 오르내리며 삶을 만끽하던 녀석이 다음날 아침 우리가 묵은 2층 계단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
"저는 이 녀석이 우리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상관하지 않아요. 단지 손님의 영역에만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줄 뿐이에요."
주인의 무심한 배려가 참 쿨한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정원 지붕에서 석양의 안온한 기온에서 한 시간쯤 낮잠을 즐긴 야생 여우 한 마리는 스스로 지붕을 내려와 정원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가버렸다.
1620년 필그림 파더스를 태우고 메이플라워호가 출항한 곳이며 1912년에는 RMS 타이타닉이 출항한 곳인 사우샘프턴(Southampton)은 이 도시의 관문이었던 중세성문 바게이트(Bargate)를 중심으로 상권 개발에 한창이었다. 번다한 Above Bar St의 한 가게 앞에 놓은 떠돌이 동물들을 위한 물 한 그릇. 치열한 삶 속에서 이 물 한 그릇을 떠놓는 이런 배려는 모든 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미국 산타바바라 카운티의 덴마크 커뮤니티(Danish Village), 솔뱅의 솔뱅 공원(Solvang Park)에서 더 진보된 배려를 만났다. 걷는 여행자가 한숨을 돌릴 수 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상이 있는 도심의 휴식공간에 반려견을 위한 배려는 펫 음수대. 이 공원의 3단 음수대의 가장 아래 음수대는 어른과 어린이를 위한 두 단의 음수대와 똑같은 디자인이다. 반려견과 함께 걷던 사람이 위의 버튼을 누르면 반려동물도 가장 아래의 음수대에서 청량한 물을 마실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사람이 목이 마르다면 동물들도 목이 마를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디자인에 반영한 솔뱅의 행정가들에게 흐뭇해졌다.
"사람이 목마르면 반려동물도 목이 마를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
20230717
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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