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워커의 원조는 소설가가 아닐까?

다른 직업인을 바라보는 해상도를 높이자

by 모티프레임
<출판사명이 묘하게 책과 잘 어울린다>


장강명의 에세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무려 9시간 12분에 달하는 분량으로 압박이 있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들었다. 운전을 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 작업을 하면서 운동을 하면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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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세이 전성시대?>


갈수록 주목받는 장르 <업세이>


직업인으로서 일을 해 나가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에세이 형태로 풀어내는 이른바 <업세이> 장르의 책들이 지속적으로 출판되고 있다. 유명 소설가뿐 아니라 대중이 궁금해할 만한 직업을 가진 이들 역시 본인의 업을 주제로 다양하고 짠내(?) 가득한 이야기들을 맛깔나게 풀어내고 있다. 업세이 장르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타자가 표면적으로 바라보는 그 “일”과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은 그 “일”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업세이 장르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업의 본질에 대한 탐구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체득한 통찰이 짙은 농도로 채워져 있다. 거기에 더해 그 일과 업을 둘러싼 갖가지 웃픈 에피소드를 읽다(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업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고 순식간에 공감하며 돈 버는 일은 다 힘들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수준급의 필력을 갖춘 분들이 낸 책들도 여럿 읽어보았지만 역시 작가들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나를 포함해서 일반 독자들에게 가장 큰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너무 당연하지만 글을 쓰는 직업이라는 것. 두 번째는 약자에 대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공감대 형성에 유리한 경제적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Pay 01.png <출처: 워크넷, 2020년 기준 작가 중위소득 1,800 만원>
4년 전 자료라고는 하나 고물가 사회인 한국에서 살기 빠듯한 소득임에는 분명하다.


문학으로 먹고사는 고매한 작가라도 총대를 메야하는 순간이 온다


중세시대 이후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프리워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소설가의 다양한 속사정을 지켜보면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들도 이리저리 돈을 떼이고 인세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는 사실 등등 혼자인 “을”로써 생존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드러난다. 출판 업계의 고질적 문제를 지닌 시스템을 개인이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일 것이다. 불편하고 불합리하지만 다수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들이 피해를 지속, 누적시키고 있다는 것. 누군가 총대를 메고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문제들이 소수의 용기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서서히 바뀌어 간다. 그 과정에서 용기 있는 소수는 항상 기득권의 눈밖에 나게 되고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 속에서 클리셰를 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소설가들이 현실에서 이토록 뻔한 클리셰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책을 들으며 작가 포함, 모든 직업적 노동에 대해 우리는 최대한 정밀하고 입체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거칠게 일반화하자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타인의 일을 저평가하고 자신의 일을 고평가 하는 경향이 있는데 참으로 신기할 노릇이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자신의 일이 타인의 노동, 특히 비 정기적인 일을 하는 프리워커와 함께 협업, 의뢰해야 하는 상황이 다양한 직군에 걸쳐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일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기준값이 꼭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발자를 비롯한 몇몇 직업군은 일의 특성상 노동 가치 정량화가 잘 되어있는 편인데 반해 아직도 다양한 직군의 프리워커에게 기준값이란 상대방이 알아서 잘(?) 챙겨주기를 바라는 것에 그치는 상황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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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KBS 체험 삶의 현장 > EBS 극한 직업 > JTBC 워크맨>
업을 보여주는 방식은 진화했지만 뭔가 아쉽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져 가는 시대, 대안은 없을까?


자신의 일을 제외한 타인의 직업 세계에 대한 존중을 갖는다는 것은 다방면의 경험과 소양을 갖추어야 함을 말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가 점점 살기 팍팍한 사회를 만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 개개인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특정인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에 공감할 수도 있고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굉장히 싫어하는 줄임말 중의 하나인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했냐는 뉘앙스로 타인이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 불합리에 대해 냉대하고 무관심한 모습들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퍼져나가고 있다. 다들 먹고살기 힘드니까라고 어설프게 일반화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다 같이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바로 “나”가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우리”로서도 앞서 말한 공동체에 대한 공감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독서가 가장 경쟁력 있고 가성비 높은 대안이 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유튜브 시대, 타인의 시신경 간접 체험은 거의 무한대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진짜 기쁨과 어려움은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지닌 매체인 책만이 온전히 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타자(작가 또는 책 속의 인물)를 중심에 두고 감정을 이입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표피 이면의 진짜 알맹이에 대해 중요한 것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알맹이가 늘어날수록 삶이 조금은 더 즐겁고 풍성해질 거라 확신한다. 그래서 독서는 좋은 대리 경험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 월터 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내 일을 누군가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책 속에서 장강명 작가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헌신할수록 좋은 일이라고 했는데, 다들 그런 멋진 일을 찾으셨는지 궁금하다.




추가정보


- 스테르담 / 메타인지? 지금 당장 '업세이'를 쓸 것!

- 워크넷 링크 / [직업전망](183) 활동 무대 다양해진 ‘소설가’, 웹소설 등 온라인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확대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