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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n 24. 2022

코어가 약하시군요

접영도 배영도, 살아내는 기술도.

 이번 달 수영은 명동에서 배운다. 여기저기 센터를 옮겨 다니며 합리적인 가격, 좋은 선생님, 시설 편의성을 비교하는 눈이 생겼다. 회현체육센터는 가성비 좋고 이용편의가 꽤 좋은 수영장이다.


수영을 시작한 지도 이제는 일 년이 넘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수영강습을 받을 때마다 직면하지만, 갈 길이 먼 만큼 온 길도 제법 된다.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쾌적하게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프리랜서라는 강점을 십분 활용해 오전 11시 강습을 신청했다. 수강생이 딱 4명. 초보자는 없고 모두 다 평영과 접영까지 진도를 뺀 중급자들이다. 서로 비슷한 진도로 배우지만 각자 강점과 한계가 다르다. 나는 속도가 빠르고 빠르게 지친다. 배운 것을 잘 알아듣고 적용하는 편이지만 적용해 자세를 바꾸다 보면 금방 지쳐 무너진다. 한 시간 강습할 때 초반엔 앞서 나가면서 레인을 돌지만, 말미에는 먼저 출발을 양보한다. 호흡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제법 호흡이 편해져도 자세는 무너진다.


 가장 숙련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다는 접영 연습. (늘 허리 힘이 금방 풀리고 숨이 가쁘다)강사님이 배영을 추천했다.


 "천천히 두 바퀴만 배영으로 돌고 오세요."


 보통 수영 강습을 하다 배영을 할 때는 잠시 쉬는 타임이다. 누운 자세에서는 호흡을 물 밖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겐 배영도 힘이 든다. 자꾸만 옆으로 비뚤어져서 가거나, 속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


 "회원님, 골반을 더 물 표면으로 띄워 올려야 해요.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고 엉덩이가 가라앉아있어요. 발차기도 힘들고 다리를 더 높이 올려 차야 하니 힘드실 거예요."


<하체를 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있는 힘껏 골반을 띄우려니 더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팔 젓기를 잠깐 멈추고 머리 위로 양팔을 모아 뻗은 상태로 발차기만 해볼게요. 갈비뼈는 아래로 내리고, 괄약근에 힘을 주며 코어 힘으로 골반을 띄워 올리셔야 해요."


 자꾸만 가라앉는 골반을 힘겹게 띄우려 애쓰면서 다녀오고 보니 수면 위에서도 숨이 차다. 강사님이 준 처방은 선 자리에서 발과 다리를 모아서 엄지발가락을 디디고 까치발로 서는 연습을 해보라는 것. 양다리를 서로 밀면서 코어의 힘으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단다. 물속에서건 물 밖에서건 연습을 하라고 당부했다. 물속에서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까치발로 서려니 물살에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중심 잡기가 쉽지 않다.


"회원님, 코어에 힘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수영을 하면 자세도 잘 잡히지 않고, 물을 잡아 나아가는 것이 아닌, 물살에 흔들리며 가게 되어서 더 힘들어요. 처음에 자세가 아무리 예뻐도, 코어 힘이 약하면 예쁘게 잡힌 자세는 힘들어서 무너져버리게 돼요."


 바르게, 바람직하게, 잘 사는 법을 배워도, 꾸준히 이어가는 코어의 근력을 기르지 못하면 초반에만 반짝하고 지쳐 무너지게 된다. 바른 자세, 예쁜 자세는 어떻게든 배울 수 있지만, 그를 유지하고 꾸준히 이어나갈 힘을 기르는 것은 결국은 평소의 나, 평소에 내가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습관, 시간, 에너지다. 그래도 몇 년의 운동으로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결정적인 순간에 더 필요한 건 코어다. 코어 힘이 부족하면 자꾸만 굳건해 보이는 무언가에 의존하게 된다. 의존에 익숙해지면 긴 호흡으로 이뤄나가는 무언가에서는 점점 멀어진다. 사람이건, 익숙해 보이는 시스템이건, 돈이건, 내면에서 드러나는 힘 외에는 그저 잠깐 도움이 되는 것들일 뿐이다. 나에겐 코어가 필요하다. 강습을 마치고 배영 발차기를 두 바퀴 더 이어 해본다.


"힘들어도 해 버릇해야 조금씩이라도 늘지 않을까요."


 힘들다는 건, 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안다. 삶에서건, 운동에서건, 힘이 들어야 그만큼 근력이든 자세든, 꾸준한 습관이든 성장한다. 힘을 잔뜩 주어 봐야, 힘을 빼는 법도 알게 된다. 그나저나, 기술은 어떻게 늘어도, 코어는 한참 걸릴 텐데 어떻게 키우나. 수영에서도, 삶에서도 이것저것 숙제가 많다. 숙제가 아무리 많아도, 나는 결국 한 번에 하나씩밖에 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다. 오늘은 어깨가 무거워 요가로도 명상으로도 수영하느라 경직된 몸이 잘 풀리지가 않는다.


 그래. 그런 날도 있지. 오늘은 코어의 숙제를 발견한 날. 숙제가 많을 때 한 번에 해내려고 하면 또 탈이 난다.


경직된 몸과 마음을 바라보며 하타요가로 풀어내다, 끝내 잘 풀리지 않음을 느끼고 쉬어버렸다.


오늘은 쉬지만 내일은 또 연습해야지(라고 글로라도 써놔야지).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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