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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Oct 19. 2021

접영을 배우다 눈물을 흘렸다

미숙한 나에 직면하기  

한참 수영에 빠져있다. 이런저런 운동을 거쳐온 나지만 확실히 수영은 매력이 있다. 
혹자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운동을 하는 것을 '자기 관리' 라 하지만 나는 수영이 너무 재미있다. 한번 스트로크를 할 때마다, 킥을 찰 때마다 느는 느낌이 즐겁다. 즐겁다 보니 매일 수영장에 가고 싶다. 숨이 가빠졌는 줄도 모르고 한번 더 킥을 차고 싶고, 한번 더 스트로크를 하고 싶다. 25m의 레인을 한 번, 두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해 물살을 가른다. 같은 동작인 것 같지만 물속에서의 내 몸과 물의 케미가 다르다. 제대로 동작을 했을 때의 쭉 쭉 나가는 느낌, 잘 안됐을 때의 거치적거리는 느낌을 번갈아 하다 보면 신이 난다.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의 4개 영법 중에는 잘 나가는 종목도 있고, 힘든 종목도 있고, 어렵게 느껴지는 종목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종목도 있다. 어떤 영법으로 수영을 하든 나름의 숙제가 있다. 숙제를 풀어나가는 느낌도 즐겁다. 


주말에는 처음으로 강서 KBS스포츠센터에 가봤다. 일반인들에게 자유수영을 오픈하는 50m 풀이다. 국제 경기의 규격에 맞춰진 수영장이라 레인 사이가 널찍하고, 풀의 길이도 50m라 스케일이 크다. 패기롭게 수영복을 입고 출발 라인에 섰다. 자유형으로는 50m 정도는 거뜬히 갈 거라고 확신하면서.

"내가! 우리 동네 수영장에선 초급반에서 중급반으로 엄청 빠르게 올라갔단 말이야! 선생님이 빠르게 배우는 편이라고 했다고!"  


마음속으로 자신감 넘치는 셀프 토크를 되뇐 후 (이걸 되뇌었다는 건 내심 긴장됐다는 뜻이다) 발차기를 천천히 하며 조급하지 않게 가자고 다짐했다. 바닥면은 35m 지점까지는 수심이 얕지만 마지막 15m는 수심이 2m 정도로 땅에 발이 닿지 않는다. 갑자기 바닥이 깊어지니 흠칫 겁이 나기도 했지만 무사히 50m 자유형에 성공한 나는 뭔가 수영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풀에는 50m 인데도 불구하고 쉼 없이 도착지에서 바로 오픈 턴이나 플립턴으로 랠리 하는 실력자들이 제법 많았다. 숨을 헐떡이며 레인 가장자리에서 숨을 한참 고르고 출발해야 하는 나로서는 실력자가 많은 수영장은 조금 압도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바른 자세와 타이밍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저렇게 멋있게 수영하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든다. 50m를 거뜬히 헤엄쳤다는 자신감으로 돌아가는 길엔 접영을 시전 했다. 접영은 가장 화려한 영법의 수영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으른의 수영' 같은 느낌이 든다. 동네 수영 교실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배우는, 난이도 상급의 영법이기도 하고, 그만큼 물을 타는 요령도 필요하고 유연성, 근력이 고루 필요한 영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돌아오는 길에 가도 가도 레인이 끝나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에 자세와 호흡이 무너져버렸다. 함께 수영장에 간 지인은 계속 "돌핀킥의 타이밍이 흐트러졌어요. 두 번의 타이밍에 킥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중간에 한번 더 차고 있어요." 하며 피드백을 준다. 나는 어떻게든 타이밍을 잘 맞추고 싶지만 몸의 평형이 깨져버린 상태에서 버둥거리지 않기 위해 코어로 버티지 못하고 어그러진 타이밍으로 킥을 차고 있었다. 한번 리듬이 깨져 버리니 자꾸만 몸이 지 맘대로 움직인다. 집중해서 멋지게 머리로 아는 동작을 행동으로 옮기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50m 풀까지 왔는데, 뭔가 실력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쭐했는데, 여전히 초보자 강습 신세라니. '아직(도) 미숙한 나'에 직면하는 것도 쓰라린데, 미숙한 나는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열심히 버둥거린다. 뭘 어떻게 해야 나아질는지 물속에서는 머리가 멈춰버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인이 하는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도 그저 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나 버렸다. 물 속이라 안보인 줄 알았는데 눈물이야 안 보였을지 모르지만 속상한 마음은 숨겨지지 않는다. 50m라는 레인의 길이가 무색하게, 나는 리듬과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 접영의 기본기를 다시 상기하며 무호흡으로 중간까지만 갔다 돌아오는 연습을 거듭했다. 다행히 수영장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처음엔 팔 동작은 하지 않은 상태로 돌핀킥만. 가슴으로 물을 미는 느낌만 생각하면서.
두 번째엔 돌핀킥의 타이밍을 생각하며 물을 잡고 당기는 동작까지만, 팔 돌리기는 하지 않은 채로. 

세 번째엔 오른팔 왼팔을 번갈아가며 한 팔 접영. 

마지막엔 양 팔 동작을 이어서 스케이트 드릴. 


 속상한 마음을 누르고 50m 풀과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숙련자의 시점에 다다를 때까지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지금의 매 순간과 매 동작에만 집중하면서 한 동작 한 동작의 완성도를 높이자고 다짐했다. 즐겁게 웃으며 수영할 수는 없었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다 커서 미숙한 동작에 직면해 눈물을 흘리다니. 10살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참 한결같다. (그때는 아마도 피아노 연습을 하며 분에 못 이겨 눈물을 흘렸었을걸.) 머리가 아는 것을 몸으로 알기까지는 숱한 시행착오뿐 아니라 노력, 물리적 시간, 경험, 지식 등등이 필요하다. 적당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노력을 이어가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에 이를 수 없다. 결과에 이르기까지 얼마큼의 노력이 더 필요한지, 노력하는 사람으로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그 과정을 지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얼마큼의 노력이 더 필요한지, 무엇을 보완하면 되는지가 쉽게 들어온다. 운이 좋으면, 비슷한 상황을 겪은 선배의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원포인트 레슨이 있더라도 동작 자체의 숙련도를 올리기까지는 물리적 시간과 연습, 수련시간에 공을 들여야 한다. 몸이 충분히 익숙해지고 익어야 움직임과 퍼포먼스가 자연스러워진다. 


 또 앞서갔다. 또 욕심부렸다. 머리는 늘 '되고 싶은 나'가 이미 된 양 착각한다. 이런 착각이 삶을 더 재밌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지나친 상상력과 욕심이 늘 아직 미숙한 나와의 직면으로 이끈다. 미숙한 나를 만나는 과정은 늘 쓰라리다. 예전엔 미숙이 익숙으로 가기까지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해 미숙한 나를 비난했지만, 이제는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과 노력을 더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묵묵히 할 뿐이다. 비난받아야 할 것은 미숙한 내가 아니라 익숙한 줄 알았던 나의 오만함이다. 다시, 기본으로. 발차기부터 하나하나 복기하며 오만이 만들어낸 불균형을 균형으로 바로잡는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운동은 편법으로 빠지고 싶은 마음을 다시 정도로 데려와준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와 하나씩 하나씩 잡아나가다 보면, 욕심을 부리느라 잊고 있었던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세계적인 접영 선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50m 풀의 물개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배웠던 것을 능숙하게 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선택한 연습 풀이 하필 굉장히 멋진 곳이었을 뿐. 몇 개월 후 어느 시점에 다시 찾아오면, 그땐 지금보다 조금 더 익은 내가 물살을 가르고 있겠지. 그리고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쌓여서 만들어진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오늘도 아침에 수영장에 다녀왔다. 여전히 숨이 차고, 여전히 익숙하지 않지만 괜찮아. 매 순간에 집중하고 더 잘하고 싶어 즐기며 노력하는 순간순간이 참 감사하고 기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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