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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Sep 29. 2021

추월당했다, 두 번이나

빨리 가고싶었는데,알고 보니가라앉고 있었다.

수영을 배운 지 3개월이 넘어간다. 6개월은 된 줄 알았는데, 3개월이더라. 이것저것, 4개 영법을 조금씩 건드려보며 물과 친해지는 중인데, 영법마다 직면하는 숙제들이 있다. 고로, 아직 수영을 잘한다고 하기는 많이 부끄럽다. 


오늘은 골반을 써가며 롤링하는 - 스트로크에 나만의 리듬을 더할 줄 알도록 - 법을 배웠다. 다리 사이에 소위 땅콩이라고 하는 부력 도구를 끼우고, 자유형 스트로크로 팔을 저어가며 몸의 느낌과 부력에 맞춰 골반과 어깨를 롤링하는 것이다. 롤링에 집중하다 보면, 적당한 정도의 롤링각을 찾기 위해 코어와 광배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함께 느끼게 된다. 좌우로 몸을 휘젓다 몸이 돌아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발차기 없이, 천천히 팔 젓기를 하다 보면 어느 팔이 더 물을 훽 잡아 몸을 돌아가게 하는지, 어느 쪽 코어가 더 약한지 느낄 수 있다. 꽤 집중하며 가고 있는 중에, 뒤에 따라오던 남자 수강생의 물살이 느껴졌다. 온다... 오고 있다. 


 이 수강생은 우리 수영클래스에 합류한 지 고작 한 달 남짓이다. 힘이 좋은 데다 어릴 적에 수영을 배웠던 경험이 있다고. 스스로 전혀 수영을 하지 못하는 줄 알고 초급반에 신청했다가, 선생님께서 "수영을... 못하지 않는데요?"라는 말과 함께 한 번에 중급반으로 승급시킨 숨은 고수다(전문가 눈엔 고수... 까지는 아니고 중수... 정도일지 모르지만 그의 추격을 받는 동안엔 정말, 정말 고수 같았다). 


결국, 나는 중간에 멈춰 겸허하게 옆자리로 물러났다.
"먼저 가세요 선생님..." 

수영은 경쟁이 아니니까, 실력이 부족하면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민폐가 될 수는 있지만, 민폐를 끼치고 있는 내가 아쉽다해도 비키는 수밖에는 당장 어쩔 도리가 없다. 자리를 비키고 묵묵히 내 자세에 집중한다. 차근차근 다시 롤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선생님이 계신 레인 초입까지 왔다. 


"왜 그렇게 가라앉아있어?" 

<선생님, 저 왜 이렇게 느린 거예요?> 

"느린 게 문제가 아니라, 땅콩을 쓰는데도 가라앉고 있으니까 앞으로 나갈 수가 없죠." 

<왜 가라앉는 거예요?> 

"힘을 못 빼니까." 


다른 운동보다 수영은 힘을 빼야 뜨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앞으로 나가고 싶어서, 게다가 땅콩을 다리 사이에 고정시키느라 다리도 결박(?) 되어 있으니까 집중한답시고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몸은 자연스럽게 떠 있게 마련인데, 자꾸 힘을 주면서 버둥거린 것이다. 사람의 몸은 물에 뜬다. 떠 있는 중에 어디로 추진을 줄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느끼며 배운 자세를 하다 보면 몸이 나간다. 너무 잘하려고 하다 힘을 주면 어김없이 가라앉는다. 자연스럽게, 내 실력만큼 하자. 시간이 더해지면 더 능숙해진다. 너무 힘을 준다고 더 빨리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살면서 '하고 싶은 것' 만을 보느라 얼마나 가라앉고 있을까. 힘을 빼고 두둥실 떠올라야만 하고자 하는 것도 할 수 있고, 가고자 하는 곳에도 보다 쉽게 다다를 수 있다는 걸 자꾸만 놓치고 만다. 그래서 쉽게 할 수 있는 일들도 더 어렵게 하곤 한다. 이제 꽤 삶의 시간도, 경험도, 내공도 쌓인 것 같은데, 조금만 환경이나 상황이 바뀌면 여전히 '잘 하고 싶다' 는 의지가 몸에 힘을 잔뜩 들어가게 하고, 어김없이 몸은 가라앉는다. 가라앉은 몸을 띄우려면 힘을 빼야하는데, 힘을 잔뜩 준 채로 더 힘들게 앞으로 나아간다. 느리고, 외롭고, 힘겹게. 


자세를 배영으로 바꿔 다시 롤링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추월당했다. 배영은 힘을 빼기 더 어렵다. 물을 먹기 싫으니까. 몸에 힘을 주면 어김없이 얼굴이 잠긴다. 쓰는 글은 쉽지만 힘 빼기는 참 어렵다. 수영을 잘하는 이들은 물을 저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물을 타고 간다는 표현을 쓴다. 물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올라탄다. 얼마나 더 힘을 빼는 법을 배워야 물을 탈 수 있게 될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 흘려보낸다. 그리고 가볍게 몸을 띄워보려고 했다. 아직 갈 길이, 아니 뜰 길이 먼 것 같지만, 오늘도 물속에서 보낸 시간이 조금 더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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