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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n 22. 2021

최선을 다해 셔틀콕을 보낸다.

배드민턴을 쳤다. 속이 뻥 뚫리도록.

매 학기말이 되면 가르쳤던 학생의 성적 처리를 한다. 매 시간마다 열심히 들었던 학생들을 이미 정해진 성적 레인지의 열에 맞춰 점수를 매기는 건 가혹한 일이다. 행정상 고려할 것도 많고, 꼼꼼력이 다른 사람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나로서는 더 신경이 곤두선다.


성적 처리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다가, 결국 주말에 해놨던 운동 약속도 어기게 됐다. 낮에 만나려다 저녁으로 약속 시간을 미뤘다. 고맙게도 이해해주는 지인이다. 마음이 바쁠 때는, 많은 설명을  필요 없이 이해해주는 지인의 존재가  고맙다.


하루 종일 엑셀과 성적처리 요청 공문, 다운된 출석부 사이트(하필 이 시기에 다운되어버렸다…!), 고장 난 프린터까지 총체적 난국을 이어간 하루. 정신은 기진맥진했는데 몸은 충분히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서 위험한 컨디션. 이런 때 몸이 가진 에너지만큼 이상하게 머리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잡생각이 많아질 수 있다.


차에 늘 가지고 다니는 배드민턴 채를 떠올리고서, 배드민턴을 치기로 했다. 몸을 사정없이 움직이며, 에너지를 발산시켜야 했다. 경쾌하게, 즐겁게.


상대가 있는 운동을 할 때 더 즐거운 방법은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나 라켓으로 치는 운동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야외에서 배드민턴을 칠 때는 바람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야간에 칠 때는 가로등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상대의 시야가 부실 수도 있다. 어떤 공이 보내져 오든, 서로 즐겁게 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정성껏 보내준다고 생각하면 너무 멀거나 이상한 쪽으로 보내지는 공에

오히려 웃음이 난다.


누군가 타인에게 서운함이 느껴질  우리는 약자의 함정 빠지기도 한다. 내가 서운하기 때문에, 서운한 감정이 타인의 태도나 말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태도나 행동이 바뀌기를 바란다. 그가 충분히 다른 선택지를 선택할  있는데 일부러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대로 타인을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두는 사고 방식이다.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느껴. 그러니 이런 부분이 이렇게 드러나지 않도록 저렇게 해줄래?” 


하는 부탁은 솔직하고 건강한  같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상대는 내가 그렇게 느끼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다. 둘째, 상대는 자신의 기준과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셋째, 내가 제시하는 방안이 상대에겐 매우 익숙지 않은 방안이라 그걸 요구하는 사람의 의도만큼 잘할  있을지 확신할  없다.


보통은 이러한 이유들로 “아이메시지 본의 아니게 일방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최선을 다해 일방적으로 보낸 메시지를 평가해 받아칠지 말지 망설이기보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받고 상대에게 다시 온전한 방향으로 보내주려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있다면 조금 이상한 방법과 방향으로  메시지들도 조금은 가볍게, 그러면서도 고맙고 귀하게 받아들일  있다.


 공을 자꾸만 이상하게 보내지?”

하는 생각은 이내 


“아, 저 사람도 배드민턴에 익숙하지 않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내게 셔틀콕을 보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바뀐다. 그럼 나는 이상한 공을 어렵게 받아쳐야 하는 상황이 아닌, 최선을 다해 보내주는 공을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받아치는 태도로 꿀 수 있다. 각자 서로의 최선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기에  받아쳤더라도 서로의 마음에 남는 앙금이 없다. 어쩔  없는  어쩔  없는 것이다. 모든 공을  받아칠 수는 없다.


오래간만에 배드민턴으로 흠뻑 땀을 흘리고 많이 웃었다. 그리고 구기종목은 혼자가 아닌 함께라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서툴더라도 능숙하더라도 배울 것이 있는 세계가 몸 쓰는 세계다. 게다가 실컷 움직이고 마시는 노천 맥주 한 캔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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