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없이, 평가 없이, 오롯하게 나를 만나기
주말, 어쩌다 보니 운동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번 주말에는 달리기를 5킬로씩 두 번, 수영을 야외수영장에서 세 시간 정도 했다. 함께 운동하는 지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운동하는 시간은 오롯한 나와의 시간이다. 달리기를 하든, 수영을 하든, 운동 전, 운동 중, 가볍게 담소를 나눌 시간과 사진을 남기는 시간 사이사이, 내 몸의 움직임과 반응에 집중하게 된다.
이전에는 운동을 하면 그저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호흡과, 심박, 근육의 긴장감, 평상시의 편안한 상태에 비해 긴장도가 높아지고 불쾌감이 생기는, 말 그대로 '힘든' 상태를 굳이 시간과 노력을 써가며 왜 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가만히 있어도 도동실 비어져 나오는 똥배나 허벅지 아랫 살. 셀카를 찍어도 뭔가 넙데데해 보이는 얼굴은 운동을 하든 안 하든 뭔가 불만스럽게 느껴지고,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점점 줄어들면, 가만히 있으나 운동을 하나, 배가 고픈 상태를 견디며 절식을 하나 모두 별로인 상태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때가 중요한 사인이다. 어차피 불만스러울 거, 뭘 해도 불만일 때가 '나를 만나야 할' 그때인 것이다.
꼭 외모가 아니어도, 뭔가 잘 안 되는 것 같고, 혹은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고, 뭔가 변화가 필요한 그때가 '나를 만나야 할 때' 다. 자꾸 내가 만든 기준이 오롯이 나를 못 만나게 방해하고, 멀쩡한 나를 부족하게만 볼 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저 나를 그냥 바라봐야 한다. 이 때는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왜 나는 이렇게 살쪄있는 거야."
"왜 나는 이렇게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야."
"남들은 쉽게 하는 것 같은데 왜 나한테는 어려운 거야."
아니, 그냥 당신은 지금 조금 뭔가가 불만스러운 거다. 당신의 '무언가'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런 마음 상태인 거다. 그 마음을 잡고 있는 것일 뿐인 거다. 좀 구질구질한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 다르게 분위기 전환을 해 본다. 어차피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뭘 해도 불만스러운 것이다. 설사,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다고 해도. 이때, 그래도 하면 나에게 좋을 무언가를 해본다. 머리를 쓰는 무언가가 아닌, 몸을 쓰는 무언가를 해 본다. 적어도 운동하는 동안 숨차고 힘들고 비루한 체력에 짜증이 날지라도 하고 나면 운동을 하긴 했으니까. 잡생각은 적어도 비워졌을 테니까.
나는 운동을 할 때, '운동을 한다' 고 생각하기보단, 삶의 시간이 간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떻게든 시간이 가는데 지금은 내가 뭔가를 들어 올리거나, 물속에서 물을 젓고 있거나,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힘들다' 고 느끼기보다, 아 지금 숨이 좀 가쁘구나. 아 지금 허벅지에 힘이 이렇게 들어갔구나. 코어에 힘이 이렇게 들어갔구나. 하고 순간순간에 집중하면 시간이 금방 간다. 결국은 운동 한 시간은 매 순간 느끼는 일 분 일초의 합이다. 삶도 그렇다.
뭔가를 처음 시작할 때, 완성된 상태를 생각하면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우리는 때로 우리가 처음 시작하는 많은 것들에 시간과 숙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급하게 군다. 잘 맞고 안 맞고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건 내 경험으로 입맛에 맞는 음식 정도밖에는 없다. (그나마도 매번 먹으면 물린다.)
이상적인 기준을 내려놓고, 마치 연애를 하듯,
"아, 이럴 때 이런 느낌이구나. 이런 반응이구나. 조금 느리게 해 볼까. 쉬엄쉬엄 해볼까."
포기는 나에겐 좋은 건 아니니까, 포기하지 않을 만큼 완급조절하며, 내가 나를 배려해주면서 움직여본다.
우리는 안다. 한 번에 제대로 하고 다시는 안 하는 것보다 어설프게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결국 나에겐 훨씬 더 달콤한 결과가 된다는 걸.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걷지만, 걸음마조차, 한 번에 잘하지 못했던 우리다.
내가 가진 모든 기준을 내려놓고, 관대하게, 여유롭게,
판단, 평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며 운동하기:)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신감이 있고 당당해 보이는 건, 자신과 만나고 스스로를 돌봤던 시간이 그만큼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