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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Sep 09. 2023

그림자를 만나는 중

매트릭스의 네오로 거듭나는 삶

2023년은 신기한 해다. 독립 후 다시 본가인 인천 방향으로, 내 그릇보다 큰 보금자리에 담겨 있다, 다시 서울로 입성했다. 풍소재에 들어와 삶의 변화는 급물살을 탔다.


매주, 매 달 각성이 있었다. 새로운 인연에 닿았다. 그동안의 인연들도 그 존재가 달라지는 각성을 거듭하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 내면과 외면이, 관계가 모두 새롭게 각성되고 있었다.


새로운 연과 흐름이 계속해 다가오는 것이 재밌었다. 새로운 공기는 머물러 안정을 취하던 내 삶에 끊임없는 변화를 만들었다. 정신없이 헤매고, 직관의 메시지에 몸을 맡겼다. 에고가 해야만 한다고 쉴 새 없이 속삭이던 것들에서 잠시 스톱하고, 하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큰 사람들이 다가왔다. 파장과 영향력이 큰 사람, 지식이 큰 사람, 관념이 큰 사람, 에너지가 큰 사람, 몸이 강한 사람, 존재가 큰 사람… 그리고 그들이 나를 한 존재로 대해 줄 때, 기쁨으로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림자에 사로잡혔다. 인간은 모두 영적 존재라, 스스로 직접 느끼지 못한다 해도 무의식에서 영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그 사이사이, 에고가 자신과 타자를 평가하기도 한다.


큰 사람들의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나를 폄하하고, 그들의 탁월성을 나와 비교하며 조금 위축이 됐다. 위축된 나와 관계없이, 흐름과 연은 계속 큰 무대로 나를 인도한다.


큰 무대, 작은 무대가 따로 없다는 걸 안다. 한 사람에게든 대중에게든 전심전력으로 나를 보여주면 될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내가 뭘 할 수 있나, 나는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초대될 자격이 있나. 이들은 왜 나를 소중하게 대하나. 내가 뭔가. 누군가. 하는 그림자를 만난다.


제주에 다녀와서, 내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졌다. 유한성에 직면하고, 한편으론 내가 부르짖는 이상의 크기가 얼마나 큰가에 대해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작고 보잘것없으면서, 이렇게나 큰 이상을 갖고 산다고? 하고 조소하기도 했다. 이틀 정도, 운동을 쉬며 아침에는 깊게 명상을 하고 저녁에 독주를 마셨다.


“나는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사랑하는 이와 행복한 한때를 이어가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그게 공주님의 에필로그에 딱 어울리는 결말이잖아.”


공주님이 짝과 맺어지는 작품들에서 동화는 끝나지만 삶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짝꿍과 맺어지면 끝나는 동화를 삶의 그림으로 잡고 있었다. 그러나 짝꿍과 맺어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삶에서 만나는 인연은, 생의 목적을 풍요롭게 완수하기 위해 서로를 각성시키는 여정에서 만나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동화 속 주인공이 동화를 끝내고 영화를 찍는, 더 넓고 큰 세계관으로 걸어 나가는 확장의 시기를 걷고 있는 것이다.


아침 명상의 끝자락에서.

“동화는 정말로, 끝이 났다” 는 직관을 마주했다.


매트릭스의 네오로 태어난 느낌이다.


내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어떤 사람인지, 왜 존재하는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주어진 길을 믿고 따라가야 한다. 새로운 일을 할 때 요구되는 능력은 경험 속에서 연마된 것이 아니라서 직관으로 쓰면서 각성된다. 경험 속 자신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제부터는 경험 이상의 자신을 믿어야 한다. 겸허하고, 겸손하게.


42.195km도 뛸 수 있을까 불안해했던 나는 올해 풀코스 마라톤을 이미 두 번 완주했고, 하반기 세 번의 풀코스를 더 달린다. 어제는 209km 마라톤으로 안내가 이어졌다.


한 사람의 치유가 가능할까 조심스러웠는데, 의대에 진학하고, 10 사람, 100 사람, 한 번에 더 많은 이를 치유하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을 배우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센터운영의 판에 초대가 된다. 풍소재의 주인뿐 아니라 공간의 주인으로 초대가 된다.


그동안의 경험만을 놓고 나를 바라보면 모든 일들이 무릎이 후들거리는 일이다. 습관처럼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내가 뭐라고 이런 일들에 초대되는지, 내가 뭐라고 이런 존재들과의 연에 닿는지,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맘껏 쭈구리가 됐다가, 걱정에 풍덩 빠져들었다가, 그런 내가 귀여워 웃어도 봤다가.


“그래. 까짓 거 모든 것이 다 ”지금 여기 현재“ 다.”

그냥 지금의 풍요를 믿기로 했다. 잘 되겠지. 힘들어도 잘 되는 중이겠지.


나는 “잘 되는 방향으로 헤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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