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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Oct 11. 2023

Doing 말고 Being.

행위 이면에 존중의 틈 더하기.

Doing 말고 Being.


달리기 일 년의 성장을 돌아봤다. 사실 혼자서 성장한 것은 아니다. 체육에 있어 나는 아주 짧은 기간 장족의 성장을 이뤘다.


1. 나는 피지컬을 타고났다.


아버지가 야구선수, 할아버지가 배구선수셨다. 큰 키와 탄탄한 골격, 비교적 빠르게 몸으로 배우는 동체능력과 근성장능력을 타고났다. 어릴 때부터 나이에 비해 큰 키(빠른 생일이라 한 살 빨리 학교에 들어갔는데도 키가 큰 순으로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늘 들었다)와 운동능력(체육시간에 늘 계주, 피구 잘하는 언니, 에어로빅 안무 등 리딩을 했다) 덕분에 쉬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2. 운동하는 인연을 만났다.


3년 전 나는 가까운 지인이라 부를, 은인과 닿게 되었는데, 이 존재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2시간 달리기 후 한 시간 수영, 달리기 후 다이빙, 수영 후 콘서트, 외부 모임 후 사이클 등의 피지컬 액티비티를 할 수 있어야 했다. 식습관은 국밥, 아니면 라면. 순대. 정성이 가득 들었지만 단출한 메뉴를 좋아하는 은인이었기에 나는 기꺼이 내 습관을 바꿨다. 살이 빠지고 근육량이 늘고, 체형이 바뀌었다.


3. 무엇을 했는가 이면에 어떻게 존재했는가.


3년 전에도 나는 운동을 했다. 그러나 이토록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내가 생각해도 대단하다. 아마 그토록 격한 운동을 기꺼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있다고 믿어주고 아껴준 마음 덕분일 것이다. 내 은인은 아마 잘 모르겠지만.


건강습관 코칭을 하며,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의 모멘텀을 만드는 근원적인 힘은 “사랑”이라 확신한다. 그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내면의 존재에 힘을 불어넣는 신뢰와 지지. 응원.


아무리 탁월한 컨설팅과 티칭이라도, 존재가 온 마음으로 그에 몰입하지 못하면 습관이 되지 못하고 행위에 그친다. 행위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엘리멘탈에서 물과 불이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표면온도가 1000도 넘는 불과, 끓는점이 100도인 물이 서로 닿을 때 발생한 수증기가 물과 불 사이 안전한 틈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서로 공존을 위한 안전막.


“Doing”은 서로 존중의 틈을 사이에 두고 서로 공존하는 가운데 “Being” 이 된다. 아무리 좋고 탁월한 행위라도, 나 혼자 관찰하고 고민해 선택한 행위는 공존을 향한 무언가가 될 수 없다. 물과 불 사이, 수증기의 틈을 만드는 공존의 방법은 서로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직접 듣는, ”존재를 향한 호기심“이다. 그러한 호기심 없이, 호기심을 실재하게 하는 ”질문“없이 일어나는 행위는 행위자의 본의와 관계없이, ”상대를 통제하는 일방성“ 이 되어버린다. 합의 없는 통제와 수용은 양 쪽을 소진시키게 될 수도 있다.


4. 건강한 Being 은 무엇인가.


질문이다. 느닷없는 질문이 아닌, 상대의 언어를 페이싱하면서도, 본질과 잇는 질문.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고, 그것이 진정 원하는 본질과 닿아 있는지, 그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은 존재가 존재에게 다가가면서도 안전거리를 확보하게 하고, 존재가 자신을 위한 주도권을 자유롭게 관계 속에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쓰다 보니. 이게 또 코칭이다.


물과 불은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수증기의 막“ 을 지킬 수 있다면. 이 수증기의 막이 공존하기 위해, 물은 더 물이어야 하고, 불은 더 불이어야 한다. 서로 다름을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건, 융합과 용해가 아닌, 작은 “호기심의 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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