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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n 27. 2020

아빠와 자전거를 탔다

움직임일기

 어릴 때, 주말마다 가까운 산에 가족과 등산을 다녔던 것을 기억한다.

 별다른 계획이 없다가, 아빠가 "산에 가자" 하시면 번개처럼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등산에 필요한 준비물들- 물병, 간식, 간이 방석 등-을 배낭에 챙겨 들고 거실에 모였다. 일단 하기로 결정했다면 빠르게, 기쁘게, 하는 모드로 전환하라는 암묵적인 집안 분위기가 있었기에 무엇을 하든 우리 가족은 일사분란하게 즐거웠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서로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나무 얘기, 풀 얘기, 꽃 얘기에서 시작되어 최근의 근황, 서로에 대한 생각...


아쉽게도 이십대 후반을 지나며 그런 시간은 사라져버렸다. 아빠는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걷기를 꺼리시게 됐고, 나와 남동생은 나름대로 힘겹게 생존하느라 집과 소원해졌다. 엄마도, 아빠가 불편한 걸 굳이 하자고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하나되었던 주말 등산은 자연스레 뜸해졌다. 가족과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마음의 구멍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었다는 걸, 몰랐다.  


살아내다가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린 걸 알게됐을 때, 본가에 내려갔다.

부모님은 내 삶 시간을 잘 모르고, 나는 그 시간들을 일일이 표현할 수 없었다. 아파서, 버릇없이 굴었다. 야구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예의가 없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한다. 아빠가 유일하게 용납하지 못하는 행동을 아파서 예민해졌다는 이유로 난사하고, 아빠를 떠났다.


[네가 이렇게 예의없이 굴면, 너와 대화할 수 없어]

"아빠. 제 이야기 한번도 들어주신 적 없잖아요. 한번만 들어주시면 안돼요?"

[그럼 5분 줄게]

"5분 동안에 얘기할 수가 없어요. 그럼 아빠, 저 갈게요"  


나와 아빠는 꽤 오랬동안 괴로워했다. 둘이 닮아서, 사랑해서, 아버지와 딸이라는 컨텍스트의 간극이 너무 멀어져, 마음 속 메시지를 나눌 수 없어서.

아빠에게 카카오톡으로 긴 글을 적어 보내곤 했다. 메시지는 바로바로 가는데, 한참을 지나야 읽으셨다는 표시가 드러나곤 했다. 그래도 그냥 보냈다. 때로는 노래를, 때로는 시를, 때로는 긴 글을 적어 보냈다.

그리고, 어버이날 육필로 6장이나 되는 긴 편지를 썼다. 그 즈음에, 나는 인생의 벼랑끝에 서 있었다.


 오랜 시간, 자잘한 풍파를 겪으며 괜찮은 척 하면서 살았다. 이렇게 괜찮은 척을 했던 건, 아마도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빠는 내게 영웅이었고, 롤모델이었고, 가장 존경하는 분이셨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자랑스러워지려고 늘 괜찮은 척을 했다. 자랑스러워지려고 늘 자랑거리를 만들었다. 삶의 시간동안 만든 성과는 나 스스로 자랑스러우려고 한 것이 기반이지만,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에게 괜찮은 척을 하는 용도로 쌓아올려진 것들이 많았다.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내 도전과 성취의 씨앗이 되었다. 그러다 크게 넘어졌다. 지나치게 힘을 주어 괜찮은 척을 했던 탓일까. 무슨 일을 해도 자꾸 구멍이 났다. 마음에 생긴 구멍만큼이나, 큰 구멍들이 뻥뻥 뚫렸다. 매일 큰 노력 없이 꾸준히 해내던 일들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힘들어졌을 때, 나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을 용기내서 했다.

"도와주세요. 아빠. 도움이 필요해요"

 

나를 미워하는 줄 알았는데, 예의없고 버릇없는 나라서, 멀리하시는 줄 알았는데, 도와달라고 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한달음에 달려와 준 아빠. 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났다. 아버지는, 어릴 적 등산을 하던 그 때 그 모습과 비슷하게, 작아진 내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멋지게, 당당하게 서 계셨다. 세월의 바람을 맨몸으로 맞아가며, 몸은 나이를 먹었을지언정, 시간의 바람을 맞으며 쌓아온, 아빠의 강하고 단단한 힘이 뿜어져나오는, 내가 너무 닮고 싶고 본받고 싶은, 그 모습 그대로.


어떤 말로도 전하지 못했던 외로웠던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안아주셨다. 그제서야,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삶의 매듭을 하나 하나 털어놓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힘겹고 외로웠던 때.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들까지 모두. 지금의 내 상태에 대해서도. 다 듣고 나신 아빠는 놀라기도 하셨고, 슬퍼하기도 하셨고, 한편으론 아프셨고, 다른 한편으론 안도하셨다. 아빠는, 곁에 있어주셨다.


[예림아. 네 안에는 할머니가 계시고, 할아버지가 계시고,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어. 실수를 했더라도, 네 안에 쌓인 지혜가 너를 이끌어줄거야. 너를 믿어. 믿기 힘들다면 너를 만든, 조상님들의 유전자를 믿어. 이겨내는 건 네 몫이지만, 결코 너 혼자 하는게 아니야. 용기있게, 도와달라고 했던 네가 아빠는 정말 자랑스럽다. 너를 믿으렴.]


아빠와 자전거를 탔다. 얼굴을 스쳐가는 선선한 바람결에 눈물을 실었다. 앞서가는 아빠의 곧은 등허리가, 페달을 밟는 비복근과 가자미근이, 아빠의 삶에서 쌓인 몸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는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스스로를 세우고, 품격있고 존엄하게 살아오신 분이셨다. 아빠도 흔들렸던 적이 있을 것이다. 아빠도 실수를 하고 사무치는 후회를 곱씹으며 부끄러워했던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늘 아버지는 그런 밤을 지나보낸 아침에, 꼿꼿하게 등허리를 펴고, 한 걸음 한걸음, 후들거리더라도 발바닥에 힘을 주어 몸무게를 싣고, 땅을 디디며 걸어오셨을 것이다.


매일 운동을 해 보면 안다.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든, 매일의 몸은 선택과 행동의 누적이다. 한번에 이뤄지는 건 그 어디에도 없다. 어떻게 살든 몸은 그만큼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삶은 어떤 방식으로건 힘이 든다. 어떤 방식이건 쉬운 건 없다. 육체적으로 힘든 걸, 마음의 행복으로 전환시킨다. '나다움' 이라는 건, 마음을 쓰는 방향으로 몸을 써가고, 몸을 쓰는 방향으로 마음을 쓰는 과정일는지도 모른다. 몸은 솔직하고 투명하다. 그래서 내가 진실하게 살면, 그만큼 건강해진다. 그러나 한순간 진실을 잃으면 그만큼 고통스럽다. 사람마다 몸과 마음을 쓰는 방식과, 신념, 가치관이 다르기에 진실을 사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나 진실을 사는 것에 대한 본질은 같다. 그 본질을 아빠의 뒷모습에서 오롯이 느낀다.


아빠에게 떳떳한 딸이 되야지. 아빠는 내 몸이니까.

아빠와. 자전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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