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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Dec 07. 2023

왜 나만 참아야돼요?

23.11.16


왜 나만 참아야돼요?


3살때, 동생이 태어났다. 또랑또랑하고 똑 부러지는

아기인데다, 친가 외가 통틀어 첫 손주라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런데 남동생이 태어나고 역학관계가 확 바뀌었다. 아들이라서도 그렇지만 아기를 돌보는 것은 여간 공이 드는 일이 아니다. 그나마도 말이 통하고 제 몸을 가눌 줄 아는 아기였던 나는 어른들의 “믿거라”하는 신뢰(라 말하고 방치라 읽는다)를 받게 되었다.


처음 주어진 자유가 낯설어 자꾸 부모님의 눈길을 끄는 행동을 했다. 화장실에 틀어박혀 숨어있기도 하고(내가 없어져도 아무일도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엄마 아빠에게 “나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요. 나는 여기서 있을 곳이 없어요.” 하며 칭얼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서운함은 이내 동생을 향한 어마어마한 사랑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길은 동생을 돌보는 일을 돕는 것이라는 걸 이내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장하며,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거나,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자기를 돌보느라 노고를 쏟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걸 잊거나, 의미 없는 시시비비, 명명백백을 가리느라 사랑을 져버리는 존재들을 보노라면, 묘하게 슬픈 느낌이 든다. 저들이 자기다움의 빛을, 자신과 타인에게 일관된 긍휼감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에너지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충만해질까.


오늘 TRE세션을 하며, 마음에 흐르는 묘한 슬픔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척추를 따라 생명의 떨림을 따라가보는 가운데, 슬픔은 걷히고, 아이가 되어 해맑게 웃고 즐거워하는 나를 만났다.


그냥 조금 더 힘을 빼보자. 궁극의 정성은 “힘빼고 바라보는 것”이다.


신에게 물었다.


왜 나만 이해해야 하고, 헤아려야 하고, 깨우고 일깨워야 하고, 긍휼과 지지를 하염없이 전해야 하죠?


너만 그렇지 않다. 자연은 자신에게 잘 하는 인간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자는 이미 그 자체로 우주다. 우주의 이치를 알고 공명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온전히 내어줌의 과정이다. 사실, 온전히 내어주는 것과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음은 다르지 않다. 본래 존재는 아무것도 소유한 게 없다. 내어준답시고 소진되고 지친 마음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 본래 나는 참았던 것도, 기다리던 것도, 내어준 것도 없다. 그저 그렇게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는 마음만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가볍게, 해야 할 것을 하면 된다. 응답이 있건 없건, 해야 할 것을 아이처럼 즐겁게, 가볍게 하면 된다. 모두 다 되어지고 있고, 될 일은 된다. 그 여정에서 내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을 뿐, 사실 나는 그저 되어짐의 여정에 함께 파도를 타고 있을 뿐이다.


#에고만나기 #감사 #지구사랑 #우주가되기 #tre명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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