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사막으로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풍소재에는 니체와 도나도 있지만, 다양한 식물들도 있다.
2019년, 연남동에서 몸쓰는연구소를 오픈할 즈음, 약 20그루의 나무들이 선물로 들어왔었다. 개업선물로 화분을 선물받는 것은 으레의 리추얼이지만, 작은 꽃나무부터 큰 관목까지 그렇게 많은 생명을 받아본 적이 없어 많이 걱정이 됐다. 이 생명들을 내가 잘 키우지 못하면 어쩌나. 10월부터 1월까지, 갖가지 나무들과 꽃을 애지중지 키웠다. 출근하면 바로 하는 일들이 꽃나무와 인사하고 목마른 나무에 물을 주는 일이었다.
1월, 혹독한 추위에 좁은 사무실의 공간을 확보하려고 꽃나무들을 잠시 마당에 내어 놓고 명상수업을 하는 2-3시간이 있었다. 영하 15도의 추위였던가. 고작 2-3시간이었는데, 대부분의 화분은 처참하게 얼어죽었다. 냉해를 입어 상한 나무들을 미안한 마음으로 처분하면서, 생명의 섬세함을 다시 깨닫게 됐다.
식물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하려면 섬세한 관찰이 필요하다. 식물마다 어떻게 대하면 되는지의 지침이 딸려오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키우는 환경은 화원의 환경만큼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침대로만 따르는 것도 나무에게 좋지 않다.
화분의 흙을 손으로 잠시 매만져보고, 흙이 말라 있으면 이파리가 건조한지를 살핀다. 이파리의 두께가 여느 때보다 얇아져 있으면 흙이 흠뻑 젖도록 물을 준다.
바람이 통하도록 환기도 할 겸 이따금 창을 열어둔다. 식물의 생존에 햇볕과 바람은 매우 중요하다. 햇볕은 직사광선보다는 간접으로 들어오는 빛이 대부분의 식물에게 더 좋다.
식물을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이에게 화분을 선물한 적이 있다. 생명과 존재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느낌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선물한 식물들은, 내 경험으론 조금 게으른 듯 관심을 줘도 잘 사는 것들이다.
화분을 죽일까봐 무척이나 부담스러워했던 그는 끝내 스투키, 수경 몬스테라, 사랑초 등 키우기 쉽다고 이름난 화분들을 모두 길러내지 못했다. 물을 너무 자주 주거나, 화분의 위치를 너무 자주 옮기거나, 화분이 죽을까 걱정스런 에너지를 화분에 쏟은 탓이었다. 그의 세계속에서는 화분을 돌보는 자기 자신만 있었지, 물을 너무 많이 주어 힘들어하는 식물의 상태나, 화분의 위치를 계속해서 옮기느라 뿌리와 잎이 상하는 화분의 이야기가 통할 겨를이 없었다. 부담스러워 하는 마음만 있었지, 식물가게나 인터넷에 화분을 어떻게 돌보면 좋을지를 알아보는 탐구는 없었다.
끝내 나는 그에게 화분을 선물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생명과의 교감을 나누는 기쁨을 그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도 포기했다. 생명을 나누는 기쁨은 무조건적인 존재에 대한 교감과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인 듯 하다.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과 잘 키우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식물을 키우는 “행위”에 머무르면, 행위에 숨이 막히는 식물을 알아차릴 수 없다.
모처럼 풍소재의 식물들에 하나 하나 인사하며 물을 줬다.
“함께 해주어 고마와.”
동식물과 만나지는 인연 역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이 사람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그저 존재로 내어두고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겠지라는 긍휼감으로, 솔직하고 투명한 존중감으로 대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화분을 선물하는 것을 포기하는 수밖에. 생명이 없는 행위와 사랑이 없는 행위에는 오로지 욕구만 있다. 욕구는 사막과 같아서 메마른 불덩이 같이 척박하다. 지구의 어딘가에는 사막이 있고, 사막에서 식물이 생하는 기적을 바랄 수는 없다. 사막은 사막으로 두는 것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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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tzsche and Donne are among the residents (cats) of Poongsojae, but there are also various plants.
In 2019, around the time I was opening the Body Movement Research Lab in Yeonnam-dong, about 20 trees were gifted to me. It’s customary to receive potted plants as opening gifts, but I had never received so many living beings, from small flower trees to large shrubs, and I was very worried. What if I couldn't take good care of these lives? From October to January, I carefully nurtured various trees and flowers. The first thing I did upon arriving at work was to greet the flower trees and water those that needed it.
In January, during a severe cold spell, I temporarily placed the flower trees outside in the yard for 2-3 hours while holding a meditation class, to free up space in the small office. The temperature was around -15 degrees Celsius. It was only 2-3 hours, but most of the pots froze and died miserably. Disposing of the frostbitten trees with a heavy heart, I was reminded once again of the delicacy of life.
Plants cannot speak, so delicate observation is necessary to live with them. While guidelines on how to care for each plant may be provided, my environment is not as ideal as a nursery’s, so following the guidelines exactly may not be good for the plants.
I touch the soil in the pot briefly, and if the soil is dry, I check if the leaves are dry. If the leaves are thinner than usual, I water the soil thoroughly.
I sometimes open the window to let the wind in for ventilation. Sunlight and wind are very important for the survival of plants. Most plants do better with indirect light rather than direct sunlight.
I once gave a potted plant to someone who had never grown a plant before. I wanted to share the feeling of communicating and interacting with life. The plants I gifted were ones that, in my experience, thrive with minimal attention.
He was very burdened by the fear of killing the plants and eventually couldn’t keep any of the easy-to-care-for plants like Sansevieria, hydroponic Monstera, and Oxalis alive. He either watered them too often, moved the pots too frequently, or projected his anxiety about their survival onto the plants. In his world, there was only himself taking care of the plants, without any consideration of the plants’ conditions—whether they were suffering from overwatering or were damaged by frequent relocation. He only had a burdened mind without any exploration into how to care for the plants by asking the store or researching online.
In the end, I gave up gifting him plants. I also gave up on sharing the joy of interacting with life with him. The joy of sharing life seems to require an unconditional connection and trust in existence as its foundation. This is where the difference lies between people who can care for plants well and those who cannot. If one remains in the "act" of caring for plants, they cannot notice the plants suffocating from that act.
For the first time in a while, I greeted and watered each plant in Poongsojae.
“Thank you for being with me.”
The connections we have with plants and animals don’t happen as we wish, so how much more so with people? When I cannot understand why someone is the way they are, how should I respond when it’s difficult to just let them be, with the hope that someday I’ll understand, with compassion, and with honest and transparent respect?
I can only tend to the plants given to me with care, but I must give up gifting my own plants. Acts without life and acts without love contain only desire. Desire is like a desert—dry and barren like a scorching wasteland. There are deserts somewhere on Earth, and it’s impossible to expect the miracle of plants thriving in the desert. Perhaps, leaving the desert as it is might be the most natural 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