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림 Aug 05. 2020

책임진다는 것.

바벨을 들며, 삶의 무게를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자질구레한 재주가 많았다. 글짓기, 그림 그리기, 악기 다루기, 운동 모두 빨리 배우는 편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느닷없이 간판 글씨를 읽어서, 엄마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나. 그저 습득이 조금 빠른 편이고, 개발은 역시 남들과 비슷한 속도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개발은 남보다 느릴지도. 그리고 꾸준하기보단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떠올리는 걸 더 익숙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떠올리며 살다 보니, 올라온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고, 실체화시키고, 떠오른 생각을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름의 사이클을 넘어가며 유기적인 작용을 해나가도록, 시스템화시키는 것에 약했다. 강사라는 직업 특성상, ‘시스템화에는 A, B, C가 필요하니, 삶에 이러이러한 것을 더하세요.’를 하곤 했다. 사실은 어떻게 그 요소들을 더하는지, 산물은 무엇이며 부산물은 무엇이 될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예측 가능한 노력은 뭐고 예측 불가인 추가적 자원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타인에겐 뭐가 더 필요한지 그렇게나 생각하면서, 나는 머리만 동동 떠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삶이, 코로나를 만나고 동동 뜬 머리로는 살기 어려워졌다. 삶의 여러 요소가 와장창 흔들린 뒤부터는 머리보다는 몸을 원하는 세상의 니즈가 커졌고, 생존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코로나 이전에도 난, 몸을 쓰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구체적으로 몸을 쓴다는 것의 의미-  시간과 자원을 들여 구체적인 움직임을 써서 먹고사는 - 새삼 다가왔다. 당장 나에게 생존의 몸 지식, 돈 지식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성큼 다가왔다.

   먹여 살리는 것이 이렇게나 무겁게 느껴질 줄이야. 하고 싶은 걸 하는 데 이렇게나 큰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질 줄이야. 스스로를 생계의 파도 속에 세웠다. 두려움이 온몸을 뒤덮는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파도를 피할 방법이 아무래도 없었다. 그리고, 생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꼴깍꼴깍, 짠물을 삼켜가며 일단 공포를 실천적인 고민으로 돌아 세우는 것에 익숙해졌다.

삶의 책임은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구나.
무겁다고 느껴질 때, 들어 올릴 기술을 배우는 것.
바벨 운동을 할 때, 무거운 중량의 바벨을 들어 올릴 때는, 척추를 보호하기 위해 허리 보호대를 차고, 양 팔로 바벨을 잡은 후 허리가 꺾이지 않게,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허리를 중립에 맞춰 놓은 채로, 광배를 살짝 조이고 복압을 넣은 채로 그대로 바벨을 뽑아 올리듯이 들어 올려야 부상이 없다. 바벨을 들어 올리기  조차, 바벨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물며 삶은 어떠랴.

책임의 무게는 꽤나 무거워서,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머리와 가슴 사이에 생각을 이제부터 가슴으로 전할 거라는 암시를 주고, 가슴은 하체로, 지금부터 머리의 아이디어가 가슴으로 내려와 ‘해야겠다’는 울림을, 더욱 내려와 고되지만 두 다리로 실천해야 할 거라는 메시지를 온몸에 미리 워밍업 해 두어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단지 들어 올렸다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들어 올려 나름의 의미를 가진 행동을 반복하면서 가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슴-몸의 암시가 지속적으로 동기가 되어야 한다.

아직, 지속적으로 어떤 행동을 반복 해갈 수 있어야 삶에 대한 책임을 조금 더 명확하게 질 수 있는지는 조금 더 골똘히 탐색해 보아야 할 이번 삶의 숙제다. 사실, 이것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삶은 운동보다 어렵다. 나는 가치를 생계로 바꾸는 주름을 왜 아직까지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까.

가계부를 써본다.
어떡하면 사람들이 하고 싶은-그러면서도 내가 전문성을 발휘해 도울 수 있는- 일을 꺼내놓고 알릴까.
시작하고 나서 꾸준히 유지하는 걸 배워보자.
시작하기 전, 조금 더 다듬고 다듬어 충분히 시스템화한 후에 드러내 보자.
나 스스로를 조금 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자.

금전출납에 대한 가계부뿐만 아니라,
자존감에도 가계부가 필요할  같다.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은 
인정, 지지, 칭찬, 응원과 별개로 
오로지 내 몫이며 이번 삶에서 내게 주어진 숙제다.
이왕 해야 할 것이라면 즐겁게 해야지.
성장하며 해야지.

이번 숙제는 꽤나 어렵지만,
뭐든 무릎이 후들거리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해왔던 나고, (기준을 조금만 낮추면) 생각보다 꽤 잘, 해냈던 나였으니까.

긍정적인 마인드만으로는 부족하다.
실력을 쌓자. 꾸준하자. 고민도, 준비도, 탐색도,
결국은 뚝심과 끈기로 하는 것 같다.
지레 지치지만 않으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를 맞으며 걸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