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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May 20. 2021

거북이등을 찬 수영은 '멋'이 없잖아요

겉모습보다, 주어진 단계에서 열심히 하는 게 더 멋있는 거예요

 수영이 재미있어졌다. 언젠가부터 주말에만 지인을 통해 수영을 알음알음 배우다,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동네의 스포츠센터 아침 수영반에 등록을 했다. 프리다이빙으로 미리 물에 익숙해져선지, 주말마다 이따금씩 어깨너머로 배운 가닥이 있어선지, 한 번 갈 때마다 실력이 확확 느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수영을 하러 가는 것이 재밌다.


 어느 스포츠센터에나 꽤 오랜 시간 동안 운동을 해 왔던 터줏대감 그룹이 있다. 어떤 운동이나 그룹을 지어 입문자를 챙기고 함께 운동하는 시간을 나름의 소식 공유와 친목도모의 문화로 변모시키는 그룹은 이른바 '아주머니' 그룹인 것 같다. 여태 헬스장, 요가원을 전전하며 느꼈지만 이들 그룹은 운동을 할 때는 즐겁게, 탈의실에서는 서로를 챙기며 삶과 운동을 나눈다. 새로 온 이들에게 미처 여쭤보지 못한 정보를 먼저 알려주고, 더 빠른 적응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운이 나쁠 때는 새로운 멤버를 배척하기도 한다. 다행히 나는 운이 좋아서인지 대체로 따뜻하게 적응을 도와주시는 그룹들을 두루 만났다. (아마도 먼저 친한 척하지 않으면서도 조심스레 필요한 정보를 여쭤보는 소심하면서도 뻔뻔한 성격이 한몫했으리라. 의외로 낯선 이들과 친해질 때는 한 번에 확 다가가는 것이 부담스럽다. 서서히 스며들듯, 혼자 열심히 하다가 하나씩 상대가 준비되었을 때 물어보거나, 상대가 말을 걸어줄 때 수줍게 말문을 여는 것이 운동을 하며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다.)


내가 다니는 수영교실에는 평균 8~10명 정도의 사람들이 꾸준히 참여한다. 딱 보기에도 엄청 오래 다니고 계신 어머님들의 포스가 느껴진다. 탈의실에서는 그저 평범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어머님들이신데,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면 눈빛이 바뀐다. 즐거운데 진지하다. 무언가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은 멋지다. 선생님에게 새로운 영법이나 자세를 배울 때도, 이들의 포스는
"이 정도는 그동안의 구력(?)으로 진지하게 해내 보겠다!"
하는 느낌이 전해온다. 이들이 접영이나 스타팅 점프, 턴을 배울 때 나는 가장 바깥쪽 레인에서 거북이등을 차고, 킥판을 밀면서 킥 연습, 호흡 연습, 팔 젓기 연습을 한다. 수영실력은 영 초보지만 그래도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어서, 선생님이 한 번에 한 가지 기본기를 알려주시면 다른 레인을 지도해주실 동안 나는 쉼 없이 레인을 왕복하며 연습을 거듭한다. 마라톤으로 다져진 체력 아닌가. 성실한 성격은 아니지만, 빠르게 실력을 늘리고 싶어서 왕복을 거듭한다. 내가 이렇게 성실하게 연습을 거듭하는 이유는, "거북이 등" 때문이다.


처음 수영 배우기를 시작할 때 선생님은 허리에 '거북이등'을 매 주시면서

"기본기 하나를 익힐 때마다 몸이 가라앉을 텐데, 그때 조급해지면 기술을 제대로 배울 수 없어요. 거북이등이 몸을 자연스럽게 띄워줄 테니 배운 것을 계속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집중해보세요."

라고 말씀하셨다. 솔직히 말하면, 허리에 부표를 메고 수영을 연습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쉼 없이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거북이등 없이 멋지게 물살을 가르며 수영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쉴 새 없이 레인을 왕복하다 보니 매 수영 교습이 끝나는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레인 끝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자 이제 그만. 출발하지 마세요. 기다려! ㅋㅋㅋㅋㅋㅋ" 하며 장난을 친다. 에너자이저 캐릭터처럼, 쉴 새 없이 레인을 왕복하기 때문이다. 멋없는 거북이 등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내 마음을 아시려나.


 연습을 하다 보니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아 선생님이 오시기 전, 거북이 등을 착용하지 않고 킥판을 잡고서 호흡 연습을 했다. 역시나 고개를 들어 올릴 때 몸이 가라앉는다. 발놀림이 빨라진다. 결국 리듬을 잃고 만다. 선생님께서 먼발치에서 보시다 돌아와 거북이등을 다시 매 주시며
"왜 거북이등을 안 하고 연습한 거예요?"
하고 묻는다.

"선생님, 거북이등은 멋이 없잖아요..."

본인은 지금 초보잖아요. 초보의 멋은 열심히 하는 데 있는 거예요. 겉보기에 멋있게 하는 멋의 단계는 열심히 하다 보면 찾아와요. 거북이 등 달고 멋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아요.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은 이해는 가지만 아직 와닿지는 않는다. 아직도 나는 거북이등을 차고 하는 수영을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북이등이 꾸준한 연습의 동기부여가 되긴 한다. 꾸준히 열심히 허벅지와 코어에 힘을 주고 오늘도 다리를 젓는다. 한번 저을 때마다 거북이 등을 벗을 날이 가까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오늘도 예쁜 수영복을 검색하고 있는 나는 얼마나 내 멋에 사는 사람인가.
멋있는 수영을 할 날은 분명 온다. 실력이 느는 것을 느끼면서 꾸준히 연습을 이어가는 과정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단계를 밟는 시간은 그래선지 신이 난다. 멋이 있는 수영을 해야지. 운동에서의 '멋' 은 그래선지 공짜가 아니다. 성장의 느낌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수영인이 돼야지. 삶에서조차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이유는 성장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다. 오늘도 꾸준히, 성장하는 행복을 누리는 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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