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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방동 반지하(banjiha)

by 박동기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서 반지하에 사시는 분들이 직견탄을 입었습니다. 소중한 생명도 잃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고 가재도구가 다 잠겨 삶 터전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특히 동작구 신대방동에 밀집한 반지하들이 직격탄을 입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신대방동 반지하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고 반지하로 내려가면 자존감도 같이 내려갔습니다. 한마디로 창피했습니다. 바로 옆 빌라에 같은 반 친구가 살았는데 나는 놀러 가도 친구는 우리 집에 초대를 못했습니다.


항상 눅눅하며 벌레가 많았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워낙 깔끔해서 마당에 잔디를 가꾸었는데 창문 반쪽 틈 사이로 잔디가 보였습니다. 여름에 잔디 푸르름을 느끼고 풀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잔디밭을 밟으며 살고 있는 주인집 아들 녀석이 부러웠습니다. 지금은 가족 별장이 있는 양평에 마당 잔디를 밝고 산다는 것만으로 기적입니다. 어릴 적 잔디와 양평 잔디는 같은 것인데 같아도 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반지하에서 바라본 잔디는 무척 푸르렀고 부자 상징으로 보였으며 밝아 볼 수 없는 거룩한 성지였습니다.


반지하에서 삶은 나름 행복했습니다.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합쳐서 살았고 웃음꽃은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모두가 같이 사니 행복했습니다. 좁은 집에 항상 사람이 많이 찾아왔고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반복이 되었습니다. 거의 산꼭대기 집이었지만 주변 환경이 깨끗하니 살만 했습니다. 반지하 생활은 다른 가족들은 지옥처럼 느껴졌을지 몰라도 나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반지하 원래 용도는 북한 남침 대비용으로 만든 방공호였습니다.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 1970년 건축법을 개정해 전시에 모든 신축 저층 주택 지하를 벙커로 사용했습니다. 1980년대 주택위기가 찾아오면서 정부에서 이 공간을 거주 시설로 사용하도록 합법화해 주었습니다.


남북 분단 상처가 깃들어 있는 반지하는 월세를 감당하기 힘든 서민과 청년들 마지막 기댈 언덕입니다. 반지하 곰팡이가 좋아서 반지하에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길바닥에 나 앉을 수 없으니 절반 가격 집세로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반지하 생활을 취미로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정부와 서울시에서 앞으로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서울에 집이 부족한데 반지하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고시원이나 쪽방촌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반지하는 장기적으로 보면 없어져야 할 것은 맞습니다만 너무 즉흥적으로 대책을 내놓은 것이 아쉽습니다. 반지하 없애는 것을 순리대로 차근차근 진행을 하고 집중 폭우 시에 배수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지하에 땅을 파니 싱크홀 등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안정적으로 설계를 해서 배수시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지상으로 올라와 편안한 거주 생활을 얻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반지하에 사시는 모든 분들이 지상 쾌적한 환경으로 올라오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기후변화로 끊임없이 되풀이 될 기상 재해 속에서 주거 빈곤층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듬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신림동 안타까운 사고가 있는 집에 새롭게 들여온 침대들이 눈에 아른거려 마음 아픈 아침입니다. 오늘 저녁도 비가 150 mm 온다고 하는데 무사히 넘어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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