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연구동 건물의 준공식이 있어 참석을 했는데 오랜만에 깔끔하게 입고 왔습니다. 어색하기는 해도 그래도 깔끔한 스타일로 입고 왔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정치인들과 그 무리들도 많이 왔습니다. 생각보다는 빨리 지은 것 같아 불안하기는 한데 일하기 좋은 시설이 들어선 것은 좋은 일입니다.
몇 명의 유명 인사와 대표님의 말씀이 끝나고 준공식이 끝났습니다. 준공 식후에 식당에 외부 뷔페를 불러서 마치 결혼 식장에 온 것처럼 음식을 접시에 담아 먹었습니다. 나는 저녁을 먹는데 뷔페 음식에 장갑을 끼고 먹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장갑을 안 끼우고 먹는데만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냐고 그러길래 나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코로나 이후에 뷔페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음식을 뜨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사회와 격리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들통이 난 것 같아 속이 뜨끔했습니다. 몇 달 전 성당에서 한 결혼식에 갔을 때는 장갑을 끼지 않았는데 무엇이 기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많고 건배사를 여러 번 외치다 보니 어수선하고 대화에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대부분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고 앉아 있는 듯했습니다. 금요일 오후면 다 약속이 많은데 의무적으로 앉아 있는 느낌입니다.
나는 뷔페의 구석 자리에 앉았습니다. 대화를 따뜻하게 이어가고 싶고 재미있게 하고 싶은데 말없이 밥만 먹었습니다. 빨리 도망갈 생각만 하게 되니 대화를 서로 이어가기도 어렵습니다. 밥을 먹은 지 1시간 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가을 하늘은 시원하게 자기의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길가에 풀을 벤지가 오래되어서 풀이 무성하고 도로까지 메뚜기와 여치들이 활보를 합니다. 여직원들이 이런 벌레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 옆에 지나가다 그 소리에 우리들이 더 놀랍니다. 벌레에 약한 MZ 세대들이 많구나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수전 케인의 비터스위트에서 인간 감정의 디폴트는 '슬픔이 있는 편안함'이라는 말에 위로가 되어서 굳이 밝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행복 횡포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있는 감정대로 표현을 하며 살아갑니다. 슬프고 애잔한 마음을 가슴속에 숨겨둔 채 간헐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가벼운 대화를 툭 던지고 서로 가볍게 밥을 먹었습니다. 오늘은 가을 날씨지만 점심 먹고 걸었습니다. 많이 더웠습니다. 그렇지만 걷고 싶었습니다. 더워도 땀이 나도 걸으니 마음이 시원했습니다.
그냥 가슴이 사막처럼 말라버려서 아무런 감정이 나지 않고 가슴을 털면 먼지밖에 안 나와 건조해졌습니다. 가슴에 습기가 필요하지만 나한테 습기는 사치가 되었고 그래도 숨은 붙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렇게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남는 자가 되는 것이 가장 강한 자입니다. 좌절하고 견뎌내고 이겨내고 다시 좌절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귀합니다.
뷔페 음식을 먹으며 편한 사람과 먹는 삼겹살집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뷔페는 건식 사우나이고 삼겹살집은 편안한 집안 욕실입니다. 뷔페는 모르는 사람과 골프 치는 것과 같고 삼겹살집은 가족과 같이 골프 치는 것과 같습니다.
뷔페는 왠지 모르게 낯선 사람 중에 한 명처럼 고립된 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사람이 많다 보니 대화에 집중하기 힘듭니다. 음식은 따뜻해야 맛있는데 컨베이어 벨트처럼 펼쳐진 음식은 한번 식어버리니 죽은 음식을 먹는 것 같습니다. 식은 음식은 제사 후 영혼이 빠진 음식처럼 맛이 사라집니다. 부르스타에 불을 때 가며 숯불에 땀을 흘려 가며 고기를 구워 먹어야 제맛입니다.
뷔페는 경조사비를 내놓고 먹는 것이라 계산에 대한 부담감은 없습니다. 따로 돈 받는 카운터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도 접시가 터질 정도로 담아 옵니다. 삼겹살집은 같은 돈을 내더라도 대접한다는 의미가 있기에 그 음식이 더 소중합니다. 삼겸살 1인분을 더 시킬지 고민하고 주문합니다. 뷔페 음식을 먹으며 감사하고 잘 먹었다고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데 삼겹살이라도 한번 얻어먹은 사람은 잘 먹었다고 굽신 거리가 다음에 꼭 자기가 사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뷔페는 만남의 단절이지만 삼겹살집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삼겹살 먹은 후 다음을 기약하며 약속을 꿈꾼다는 것은 그와 나의 설렘이고 행복의 샘물입니다.
사람도 이렇습니다. 뷔페 같은 사람과 삼겹살집에서 먹는 것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스스로 판단하기에 저는 뷔페 같은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도 따뜻해야 제맛입니다. 36.5 체온을 가진 사람이 마음이 따뜻해야 그 사람이 진국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잘 사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금요일 저녁입니다. 빗소리가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