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엔 풀씨가 세상엔 책씨가 떨어진다.

풀밭에 풀 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세상엔 책 씨 떨어지는 소리가

by 박동기

풀밭에 풀 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세상엔 책 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 햇살이 좋으니 점심 먹은 후 꼭 산책을 간다. 다니고 있는 회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계절 흐름을 시시때때로 알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거리에 은행나무 잎들은 노랗게 질긴 삶의 흔적을 도로 위에 토해냈다.


산과 거리에 나무들은 수족 같은 나뭇잎들과 처절한 이별 싸움을 하고 있다. 나무는 헤어지기 싫어하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애잔한 마음이 들 것이다. 나무는 긴 겨울 동안 혹독한 고독 시간으로 들어간다. 추운 겨울에 무서운 고독을 깊은 침묵으로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무는 항상 이맘때쯤에 떠나보내기 훈련을 한다. 몇 달 동안 같이 살아왔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나무는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다 떠나보낸다. 나무는 이맘때쯤 너무나도 냉정하다. 너무 차갑다. 내년을 준비하며 긴 고독 속으로 들어간다.


봄에 만났다가 가을에 헤어지는 삶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이 신입생이 오고 다시 학기말이 되면 헤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풀밭엔 씨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풀씨가 얼마나 많은지 검은색으로 가득 찼다. 내년에 얼마나 풀이 많이 날지 상상이 간다. 잡초의 생명력은 대단한다. 바람 타고 날아가 돌밭 사이던지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살아난다.


지금 내 모습이 잡초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여기저기 흩날려 날아다니며 씨를 뿌리고 있는 단계가 아닌가 싶다. 상록수처럼 저 거목은 되지 못하고 아직은 잡초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조그마한 흙이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다시 죽고 다시 산다.


나무는 내년 새로운 나뭇잎을 기대하며 고독을 견디고 풀씨는 내년에 잡초처럼 풀이 나는 것을 꿈꾸며 사방으로 씨를 날려댄다. 모두 떠나보내지만 조그마한 희망은 있다. 희망이 있기에 그들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잠시 움츠려있을 뿐이다.


끝나도 끝이 아닌 것처럼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처럼 나무와 풀씨는 살아있고 추운 겨울을 버티고 헐거워진 흙 속에서 다시 생명의 싹을 틔워 새 희망을 노래한다.


추운 겨울이라도, 움츠려 있더라도, 누추하더라도 죽은 게 죽은 것이 아니다. 땅이 헐거워졌을 때 다시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나뭇잎이 태어나고 잡초는 다시 태어난다.


지금은 잡초처럼 살고 싶고 사방에 내 씨를 뿌렸고 그 씨가 온 세상에 자랐으면 한다. 출간이라는 목표를 달리고 있고 책이라는 씨를 세상에 뿌릴 준비 과정에 있다. 스카이 다이빙하기 위해 비행기 난간대 위해 선 기분이며 이제 뛰어내리면 된다. 낙하산이 펴지면 살고 안 펴지면 죽는 것이다. 떨리는 심정으로 다음 주를 기대하고 좋은 계약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책 씨가 세상에 날아가서 보도 블록 위에 민들레처럼 길 가는 사람을 잠시 멈춰 세워 잔잔한 미소를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추운 겨울에 있는가. 반드시 봄은 다시 오고 새싹은 피고 농부를 힘들게 하는 잡초는 자라난다. 잡초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이 질기고 긴 삶의 여정을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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