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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Oct 10. 2023

가을 빨간 우체통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이 납니다. 밤마다 생각이 납니다. 그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사랑은 희생하는 것인데 그분이라면 희생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만남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 생각이 납니다.


가을이 깊어지다 보니 모닥불을 피우고 생각에 잠겨듭니다. 주워온 잣송이를 태우니 모닥불에 불이 금방 붙습니다. 예전에 누님들 친구들 왔을 때 모닥불 못 피워 헤맬 때보다 훨씬 빨리 불이 붙습니다. 누님 친구분들은 한참 동안 추위에 떨었습니다. 낮에 잠깐 비가 와서 장작이 젖어서인지 연기가 납니다. 눈이 맵습니다. 그분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까지는 나지는 않습니다. 그분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가까이 갈 수 없기에, 다가설 수 없기에 애틋해서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밖은 고요합니다. 세상은 고요합니다. 자연은 밤이 되니 나무까지 더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갑니다. 풀벌레들도 자러 갔는지 침묵합니다. 나도 자연과 함께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으로 더 깊게 들어갑니다. 생각의 근육이 단련되었는지 생각에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생각이 깊어질 때 그분의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납니다. 나무에 젖은 모닥불에서 연기가 많이 납니다. 연기는 내가 앉은 방향으로 계속 따라와 내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내 눈물은 그분 때문에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닥불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옵니다. 저 멀리 양평 불빛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분을 정말 좋아하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차라리 빨리 실망하게 만나서 차라도 한잔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유목민처럼 살고 있는데 누구를 만난다는 것이 어렵기는 합니다. 내 삶이 떨어져 흩날리는 낙엽과 비슷합니다.


가을입니다. 보라색 선명한 국화가 피었습니다. 낮에는 빨간 우체통 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나뭇잎들이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빨간 우체통 앞에서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립니다. 그분은 내 주소를 모르니 오지도 않을 편지 기다리며 우체통 앞에 앉아 있습니다. 가을 우체통은 빨간색 색상이 더욱 선명합니다. 파란 가을 하늘과 대비되어서인지도 모릅니다. 빨간 우체통이 외로워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그리운 편지는 오지 않고, 우체통에 고지서만 쌓여 있습니다. 그리움 대신 독촉장이 옵니다. 쿠팡에 주문한 자동 스위치밖에 올 것이 없습니다. 빨간 우체통에 있으니 그 사람이 더욱 생각납니다. 그분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수 도 있습니다. 나뭇잎들도 빨간색으로 변하고 떨어져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나뭇잎은 무덥던 여름을 잘 이겨내고, 이제 땅 속으로 겨울잠 자러 갑니다. 내 마음도 휑하고, 저 나무도 휑합니다. 편지가 올 확률이 전혀 없는 우체통 앞에서 서성이니 그래도 마음은 조금 위로가 됩니다.


다시 모닥불 앞으로 가서 책을 읽습니다. 모닥불도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밖에서 책을 읽다 보니 날씨가 쌀쌀해집니다. 저 멀리 불빛이 보이고 세상은 고요합니다. 나 만의 생각 속으로 깊어지는 시간입니다.

빨간 우체통은 설렘이고 기다림입니다. 지하철역 앞에서 퇴근하는 아버지를 딸과 강아지가 설레며 기다림같이 우체통은 설렘입니다. 약속도 없고 올 기약도 없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합니다. 딸아이와 강아지는 지하철 역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퇴근하는 아버지를 반기기 위함입니다. 어느 만날 수 없는 아버지인데도 딸과 강아지는 항상 지하철역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애틋하게 지하철역 앞에서 딸과 강아지는 기다립니다.


우체통이 빨간 이유는 선명하게 보이기 위함이고 신속함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나라마다 색깔이 다르기는 합니다. 가을 하늘아래 선명하게 빨간 우체통은 그리움입니다. 그리움이 사무쳐 우체통이 빨간색 심장으로 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체통은 빨간 심장입니다. 우체통 빨간 심장이 내 심장을 겨눕니다.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그리움입니다. 마음이 전달되지 못하고 단절이 될 때 아픔이 몰려옵니다. 우체통은 사랑, 슬픔, 경제적 고통등 모든 희로애락을 겪게 됩니다.


우체통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차고 넘치는 우체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우체통에 사랑이 담긴 수많은 편지들을 써서 보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당연시하며 열어 보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기다려도 안 올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의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때 빨리 읽어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보낸 편지도 받고 싶습니다. 여기서 그분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예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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