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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Feb 16. 2024

비가 내리면 좋다. 눈물을 닦아줘서.

꼭 퇴근 무렵에 소나기가 퍼붓습니다. 와이프가 아닌 와이퍼를 아무리 저어도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빗줄기가 고드름만 합니다. 하늘에서 고드름들이 줄지어 끊임없이 내려옵니다. 집 근처에 오니 비가 조금씩 내립니다. 오랜만에 숲을 찾았습니다. 빗줄기가 퍼부어서인지 맑은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옵니다. 비가 내리지만 뛰지 않고 걷다 보니, 젖은 비를 가득 품고 올라온 흙냄새, 꽃 냄새, 소나무 향기가 더욱 짙어집니다.


신발을 벗습니다.양말을 벗습니다. 젖은 땅을 느끼기 위해 맨발로 산책을 합니다. 촉촉한 흙의 감촉이 느껴집니다. 노쇠한  갈색 소나무 잎들을 밝으니 푹신해서 좋습니다. 발 감촉을 느끼기 위해 걷는 속도를 더 늦췄습니다. 천천히 발에서 느껴지는 산 소리와 호흡하고 싶어졌습니다. 나무들이 울음을 흘렸는지 빗물에 젖어있습니다. 그 나무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촉촉한 소나무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소나무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내 마음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살다 보면 왜 하필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까 하는 것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눈물을 흘리고 싶은데 이 세상은 눈물 흘릴 곳도 없습니다. 숲은 눈물을 흘리기에 좋은 곳입니다. 숲에 비가 내립니다. 울고 싶을 때 빗물을 맞으면 눈물을 닦지 않아도 됩니다. 빗물이 눈물을 닦아줘서 비 내리는 날에 울기에 좋습니다. 울고 싶어도 울만한 공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통곡을 하고 싶어도 울 만한 공간이 많지 않습니다. 숲이 아닌 밖에서 비 맞으며, 울고 돌아다니면 미친놈 소리 듣습니다. 하지만 숲에서 빗속에서 우는 눈물은 빗물이 닦아주고 숲이 가려줘서 쪽팔리지가 않습니다. 숲 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 나무가 위로해 줍니다. 빗물이 눈물을 닦아줍니다. 숲의 나무들이 창피한 모습도 가려줘서 사춘기 시절에 방안에 처박혀 마음을 달래는 느낌이 듭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을 더욱 깊이 묵상합니다.


숲 사이로 빗물이 떨어지는 하늘을 쳐다봅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이런 고난은 어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다시 발을 내디뎌 봅니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드니 빗물이 눈물을 닦아줍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내 눈물을 닦아줍니다. 눈물이 빗물과 함께 머리 뒤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따로 손수건이 필요 없습니다. 세상에 비굴하게 고개 숙이지 않으리라 마음가짐을 가져봅니다.


집 앞의 숲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습니다. 비 오는 날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우산은 가져갔지만 우산을 접습니다. 그냥 비에 젖습니다. 누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시비도 걸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단 둘이 있는 시간입니다. 나무들이 너 또 왔니 하고 반길 뿐입니다. 정상까지 올라왔습니다. 공기가 상쾌해서인지 허벅지도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정상에서 혹시 무지개가 뜨지 않을까 기대하며, 하늘을 두리번거립니다. 오늘은 무지개를 보지 못했습니다. 작년 이맘때는 무지개를 보았는데 작년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심판 후에 무지개 언약의 증거를 보이며 다시는 홍수의 심판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비가 계속 내리니 언약의 증거인, 무지개는 보지 못했습니다. 무지개가 구름 속에 숨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보내줄 언약의 무지개는 없나봅니다.


숲을 통과해서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 숲으로 넘어왔습니다. 세상에 돌아오니 맨발 대신 다시 신을 신었습니다.  내가 사는 곳은 횡단보도 하나 사이로 자연이 사는 숲과 인간이 사는 아파트 숲이 있습니다. 빗물에 젖어 햇빛에 반짝이는 플라타너스 잎이 고요한 가운데 작은 파장을 줍니다. 외로움에 지쳐 사랑을 간구하는 듯한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춤추는 플라타너스 잎은 항상 밝습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1도만 바꾸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1도만 바꿔도 춤추는 플라타너스 잎처럼 밝게 살 수가 있습니다. 약간은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보려고 합니다. 숲에서 통곡하고 나오니, 햇살이 비치기 시작합니다.


숲의 흔적, 흙을 갖고 있는 발을 씻고 젖은 머리를  샤워한 후에 글쓰는 훈련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잠이 옵니다. 자울 자울 합니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는지 잘 살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비 맞으며 울어서 좋았습니다.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눈물을 흘립니다. 싹이 바위 떨어지면 습기가 없어 말라죽습니다. 삶에 울음이라는 습기가 있어야 말라죽지 않고 세상에서 살 수 있습니다. 눈물은 다시 시작하는 힘이 되는 물방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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