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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사무실, 오직 나만 아는 이 밤의 무게

by 박동기

모두가 떠난 사무실은 낮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겨울이라 그런지 오후 여섯 시만 돼도 창밖엔 칠흑 같은 어둠이 몰려온다. 분주하게 오가던 발자국 소리, 전화벨 소리,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엔 거대한 정적만이 흐른다. 그 고요함 가운데 간헐적으로 들리는 기기의 히터 돌아가는 소리만이 내가 이곳에 있음을 알린다. 쓸쓸한 정적 속에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적막을 깨는 건 오직 타닥거리는 내 키보드 소리뿐이다. 창밖은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건너편 축구장의 불빛마저 꺼져버렸다. 날이 너무 추워 운동하는 사람들도 모두 들어간 모양이다. 잠시 손을 멈추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본다. 가슴 한구석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외로움이다. 하지만 단순히 혼자 있어서 느끼는 일차원적인 감정이 아니다. 예전만큼 사무치게 외롭지는 않지만, "지금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던져주는 쓸쓸함이다. 이렇게 밤늦게까지 일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일을 조금 더 한다고 해서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세상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직원들은 "수고했습니다", "먼저 갈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저녁은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밥상이나 편안한 휴식으로 채워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이 차가운 책상 앞에 붙잡혀 있는 걸까. 내가 지금 이렇게 아등바등한다고 해서 회사는 알아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의 이 고군분투를 온전히 알아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모른다. 내일 아침이면 그저 어제보다 조금 더 진전된 결과물 파일 하나만이 컴퓨터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내가 삼켜야 했던 이 고독한 시간과 피로감은 온전히 나만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참 미련하게 일한다"라고 혀를 찰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 손끝에 힘이 빠지고 깊은 회의감이 밀려온다. 정말 나, 너무 미련한 건 아닐까.


미련함을 해소해보려 인공지능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쉽게 결과물을 내지는 못한다. 모니터 속에는 인공지능(AI)과의 대화창이 띄워져 있다. 요즘은 무엇이든 인공지능으로 해결해 보려 노력한다. 녀석에게 질문을 던지고, 코드를 요청하고, 글을 다듬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뱉어내는 결과물은 매끄러울지언정, 내 고민의 깊이까지 담아내지는 못할 때가 많다. 결국 녀석이 준 답을 다시 뜯어고치고, 내 의도에 맞게 씨름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편하자고 쓰는 도구인데, 때로는 이 녀석을 설득하고 수정하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 같다. 인공지능에 많이 의존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기계가 주는 정답보다 내가 직접 씹어 삼키며 고뇌하는 시간이 더 필요함을 느낀다. 이 차가운 밤, 나는 인공지능과, 그리고 나 자신과 치열하게 고군분투 중이다.


다시금 숨을 고르고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시간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증명하는 시간이라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흘리는 땀방울은 가장 정직하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박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내 몫을 해내는 것. 그것은 회사를 위한 희생이라기보다, 내 직업적 양심이자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물론,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다. 일상을 살아내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을 잃으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니까.


나무의 나이테는 혹독한 겨울을 견딜 때 가장 단단하고 진하게 생긴다고 한다. 수년간을 견뎌온 지금, 나에게 새겨진 나이테는 어떤 모양일지 생각해 본다. 나에게 남은 흔적은 성장의 기록일까, 아니면 그저 아물지 않은 상처일까. 지난 시간을 되새김질해 본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밤, 홀로 불을 밝히며 인공지능과 씨름하고 고뇌하는 이 시간들이 내 안에 단단한 나이테 한 줄을 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간들은 결국 내 실력이 되고, 내 태도가 되고, 나라는 사람의 깊이가 될 것이다. 요란하지 않게, 결과물을 내더라도 조용히 묵직한 결과를 내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 오늘 밤, 혼자 남은 나를 너무 안쓰러워하지 말자. 이 고요함 속에서 나는 무너지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걷고 있다. 너무 빠르게 걷지도, 너무 느리게 걷지도 않고 딱 내 보폭에 맞게 걸어보자.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나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 밤의 끝에 완성될 결과물보다, 그것을 끝까지 해낸 내가 더 대견한 밤이다.

작업을 마치고 사무실 불을 끄는 순간,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내 마음만은 환하게 빛나기를. 차가운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 때 밀려오는 뿌듯함과 만족감으로, 오늘 하루도 잘 이겨냈다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오늘 하루, 정말 고생 많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주유소에 들러야겠다. 월급 통장의 숫자는 그대로인데, 주유소 전광판의 기름값은 왜 이렇게 올랐는지 모르겠다. 현실은 팍팍하고 내일도 여전히 춥겠지만, 그래도 가득 채운 기름처럼 내 마음의 연료도 단단히 채워졌기를 바라본다. 카드 청구서는 내년 초 1월에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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