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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Jul 21. 2023

이 환장할 복날,  겸손을 배운다


"아버지,  지금은 무슨 계절이에요?"

"어ᆢ어ᆢ 겨울이지,  겨울이니까ᆢ 춥지ᆢ"

아, 폭염경보에 하루종일 찜통인데, 겨울이라니!



"그럼, 아버지 몇 년 몇 월이에요? "

"칠십 칠 년ᆢ 아니 칠십 구 년인가, 기억이 안 나네ᆢ 근데 우리 아들이 차를 바꿨어, 그래서 기분이 좋아. "


나의 질문엔 얼렁뚱땅 넘어가놓고 뜬금없이 남동생이  큰  차로 바꿔서 기분이 좋다니.

아들에게 좋은 차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있지도 않은 일을 지어냈을까.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점점 어린아이가 되고 기억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고통스럽고, 당황하며 우울했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죄책감에 내가 간호사라는 게 부끄럽기만 했다.






인생의 복날도 그렇게 간다


인생에서도 3복 더위가 있다면, 그것은 청춘에서 황혼으로 넘어가는 그 중간 어디쯤일 것이다. 잘 나가던 시절, 불같은 날들, 희망과 질주와 자신감이 들끓던 날들의 끝에 문득 착시(錯視)가 찾아온다.


이 시절이 자신에게만은 영원할 것 같은 착각, 오만, 과신이 인간을 맹목으로 만든다.

거기에 한번 꺾이는 초복의 절망이 오고,

벌떡 일어서면 두 번 꺾이는 중복의 절망이 온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다지만 말복은 저절로 꺾이게 되어 있다.


번 꿇은 무릎이 결리고, 꿇은 자세에서 바라본 세계가 높아져 있고 스스로는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바로, 인생의 복날이 가는 때이다.  -  더뷰스 타임리뷰어 이빈섬-




시인의 말처럼 인생도 그렇게 지나간다.

나의 든든한 방공호가 무너지고, 언제나 내편이었던 응원군이 사라지고 있다.

내 아버지의 인생이 이렇게 꺾이고 있다.



이 뜨거운 복날,  "겨울이라 추워" 말씀하시면서도, 아버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평안했다.

아버지는 이미 아셨던 거다

뜨거운 여름이 가고 반드시 선선한 가을이 오고 추운 겨울이 올 것을.

그러니 더위에 지치고 쓰러지지 말고 그렇게 인생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라는 말씀을 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것을.


'아버지, 언젠가는 내 얼굴도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오더라도 괜찮아요.

제가  기억할 테니까요

내가 다 기억하고 있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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