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의 뜰 Aug 18. 2023

최선을 다했습니다.

서럽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오십 대 직장인이고, 둘째 딸이고 맏며느리입니다. 자식이 없어서 엄마라는 역할은 해보질 못했네요


결혼 후 3개월 만에 지하전셋집이 태풍에 물에 잠겨 갈 곳이 없어 친정 부모님 댁에서 머물기 시작했는데요 어쩌다 보니 23년째 모시고 살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간호사이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니 제가 손과 발이 되어드리는 일이 점점 많아졌어요.

속이 안 좋다, 열이 난다, 허리가 아프다, 영양제 주사 맞고 싶다 등 사소한 병원일은 물론이고, 몇 차례 쓰러져 의식을 잃을 때도, 사고를 당할 때도, 치매가 심해져 진료와 요양등급을 받을 때까지 모든 진료를 다 제가 모시고 다녀야 했어요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 대신 가서 인사드렸고, 집안 어르신들 찾아뵙고 싶다 해서 늘 운전해서 모시셨지요.

은행일, 마트 장 보는 일은 기본이고요. 맛집이나 골목투어하는 TV방송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나오면 바람도 쐴 겸 여행도 하고요.

월급날이면 꼬박 용돈 드리고,  외식도 했지요. 쉬지 않고 직장을 다녔지만 정작 돈을 모으기는커녕 부모님께 들어간 돈도 셀 수 없지요.


지금까지 저의 모든 순간, 모든 곳엔 늘 부모님이 함께 계셨어요. 그러다 보니 서른과 마흔의 제 삶은  없고 너무나 말라버린 오십 대 중년의 제가 보였어요





어제는 친정아버지의 알츠하이머 치매가 심해져 처음으로 데이케어센터에 입소한 날이었어요.

워낙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걸 싫어하셔서

거의 한 달 동안 수없이 많은 센터를 알아보고 찾아가 상담해 보고 결정한 곳인데요. 아버지를 하루 종일 케어하시는 엄마가 너무 힘겨워하셔서 서두르기도 했어요.


안 가시겠다고 투정 부리시는 아버지를 옷도 사드리고 좋은 말로 어르고 달래서 억지로 보냈지요.

하루종일 잘 적응하실지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는데요. 근무 중에 센터 간호사님께 전화통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하루종일 꼼짝도 않고 식사도 안 하신다고ᆢ '

'나는 젊고 정상인데,  왜 이런 곳에 보냈냐고ᆢ'


아버지는 안 가기로 결정했다며 퇴근하고 돌아온 저를 보자마자 통보하듯  말씀하시면서, 남동생과 언니에겐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전화하는 음성을 들었어요


,,,

힘들고 아플 땐 작은 딸만 찾으시고, 나에게 시키면 된다고 떠넘기고 부리시면서 정작 아들과 큰딸에겐 미안한 마음이셨구나.

작은 딸은 당연한 거고, 아들과 큰딸은 고마운 거였구나.




지난 이십 년 넘게 부모님 때문에 직장에 눈치 보며 동료들에게 미안해하면서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며칠을 함께 보내고, 의식 없는 노모를 들고 안고 뛰던 내 모습이 너무 아팠어요.

부모님 때문에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길가에서, 근무 중  상담하다가도 이대로 헤어질까 봐 엉엉 울던 조그마한 현경이가 너무 서러웠어요.


울고 또 울었어요. 밤새 이불 뒤집어쓰고 엉엉 소리 내서 울었어요. 지금 아침 출근하면서, 이 글을 전철 안에서 쓰면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요


그래도 저는 울겠습니다.

가족에 대한 서운함, 섭섭함, 분노, 죄책감, 후회 등 그 어떤 감정이라도 모두 남기지 않고 저의 밖으로 털어버릴 때까지 울겠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돌아오는 건 원망이었지만, 그래도 울고 나면 괜찮겠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