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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Jul 28. 2023

도와달라며 보내는 그 신호를 놓칠까 봐 두렵다.

[알츠하이머와 함께 살아가기]

만약 당신이 85세까지 살아있다면 둘 중 하나다.
알츠하이머에 걸렸거나, 그를 돌보는 사람이거나

언젠가 tvN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기억과 망각 등 신경과학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리사 제노바 (Lisa Genova), 그녀가 한 강연에서 했던 말이라고 한다.




새벽 4시 30분, 아버지 체온 39.5도, 엄마도 38도.


겨울이라고,  춥다고, 얼어 죽겠다고,  하루종일 오리털 파카와 패딩 바지를 입고 꾸부정하게 누워 떨고 계신 아버지였다. 열이 이지경이 나도록 난 대체 무엇을 돌봐드린 걸까. 엄마마저 목이 붓고, 아프다며 밤새 끙끙 앓았단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엄마, 아빠에게 오가며 열 재고, 이불 걷어드리고,  겉옷 벗겨드리면서 발만 동동 굴렀다.  


직장에 중요한 업무가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을 해야 했기에 긴급하게 남동생을 불렀다.

결국 아버지는 코로나 확진 나오고, 엄마는 증상은 같은데 결과상 음성이라고 했다.

두 분 다 병원에서 수액주사와 항생제, 해열제를 맞고 코로나 치료제 처방받아서 집으로 모시고 왔단다.

퇴근 후 아버지 컨디션을 확인하고 조용히 방을 나오는데, 가만하고 또렷한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다. 현경아,  아버지가 미안하다."

얼마만인가. 치매에 걸리기 전에 듣던 진짜 우리 아버지의 음성. 눈두덩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난 너무 무서웠다.

아버지는 열이 난다고 , 도와달라고 오리털 파카까지 입어가며 보여주셨는데, 앞으로 또다시 간절하게 보내는 아버지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놓칠까 봐 너무 두려웠다.

'정말 끝이 없구나'하며 내가 도망칠까 봐 겁이 났다.  







치매 진단받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선, 후배 간호사들이 많다.

그 어느 누구도 형편이 돼서, 여유가 있어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돌봐야 하기 때문에 돌보는 것이다.

병원에서, 회사에서 매번 동료들에게 미안해하고 눈치 보며 근무시간을 조절하고, 병원비, 요양비, 생계비를 책임지며 살아간다.

싸우다가 다독거리다가 울다가 웃다가 수없이 반복되는 상황에 지치고, 타인의 시선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헌신과 희생을 강요당하다가 결국 돌봄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았다고 해도 삶은 계속된다.

기억은 점점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가족으로써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신다고 해도,
아버지를 향한 내 마음은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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