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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Sep 18. 2023

제발 꿈이었으면, 부디 꿈이 아니기를.


꿈을 꾸었다.

갑자기 어지럽더니 그만 바닥에 철퍼덕하고 쓰러졌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 만 껌뻑이면서 큰소리로 울면서 외치고 있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지금 죽으면 안 돼요.

우리 엄마랑 아빠가 저만 기다려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흙과 눈물로 범벅된  모습에 소스라쳐서 깼다.


'아, 정말 다행이다. 꿈이라서 다행이다.'




주말 아침 부모님을 모시고 인천 무의도 바닷가로 바람 쐬러 갔다.

봄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지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알츠하이머 증상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억력이 더 방전되기 전에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게다가 얼마 전, 엄마의 가슴에 몹쓸 말로 못을 박지 않았던가.

아버지를 돌보느라 단 한순간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던 엄마에게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상처 주는 말을 해버린 후 아직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자꾸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만 생기면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고.'

지난 7년간 엄마 아빠가 번갈아 가면서 아프고, 쓰러지고, 입원치료하고, 요양병원까지... 그동안 내 삶도 없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잘 버티다가 왜 그렇게 막돼먹은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때는 뭔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었나 보다.





무의도 바다 위에 데크로 만든 산책 길을 함께 걸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마저도 힘들다며 바닷가 앞에서 발길을 돌리셨다.

해변 근처에 다행히도 카페가 있어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는데, 아버지는 허기지셨는지 당근케이크와 딸기 주스를 순식간에 다 드시고는 '아주 시원하구나' 하시며 엄마 음료마저 앞으로 가져가셨다.

생전 차가운 음식은 이가 시려서 입에도 대지 않던 분인데,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카페 안의 나무와 식물들을 둘러보셨다.

아름드리 길게 늘어진 가지에 초록잎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킹벤자민을 보시며 '참, 잘 자랐구나' 하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현경아, 나무가 이렇게 예쁘게 자라려면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스럽게 가꾸고 손길을 줘야 하잖아. 엄마도 지난 20년 동안 지금까지 너를 뒷바라지하면서 너를 위해 단 하루도 기도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혹여 네가 힘들어서 간호사일을 그만둘까 봐.  반찬 만들어 나르고 집정리 해주면서도 엄마는 단 한 번도 힘들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근데 네가 엄마에게 섭섭하다고 하는 말에 엄마가 마음이 너무 아팠어.."

엄마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아버지가 손사래를 치시면서

"거 참, 사람이 왜 이렇게  속이 좁아.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까지 뭐 하러 작은 딸 속상한 얘기를 꺼내나? 그만해"  하셨다


아, 엄마는 엄마라서 딸이 가시돋힌 말을 해도 하나도 서운하지 않다고 하시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속마음은 찔리고 피 흘리면서도 아닌 척하셨던 거다. 난 다시는 그런 말 입에 담지 않을 거라는 표현으로 엄마 손을 그냥 꼭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도 누군가 따뜻하게 손 잡아주길 얼마나 원했을까.





그렇게 우리 세 식구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고 근처 횟집에서 회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맛있는 거 잘 드시고, 기분 좋게 웃으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심각해지시더니 말씀하셨다.

"자동차 고치러 나왔는데, 지금 어디 가는 거니?

"배고픈데 밥은 언제 먹어?"

"너는 이제 아버지랑 안 살고 여기에서 살거니?"

라고.

아, 순간 눈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운전하다가 실수할 뻔했다.

제발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도 모른다.

부모님이 쓰러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지는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는 그 마음을.  






새벽 1시, 잠이 안 와서 마루에 나오니 아버지가 그 시간에 식탁에 앉아 법정스님의 책을 필사하고 계셨다.

"잠이 안 올 땐 이 걸 쓰면 좋아. 시간이 아주 잘 가거든. 아버지에게 너무 좋은 것을 알려줘서 고맙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디 꿈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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