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의 뜰 Sep 25. 2023

진정한 돌봄은 여전히 존경하고 있다는 표현이라는 걸

새벽 4시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시간에 아침운동을 나가서 1시간씩 걷고 오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빠의 치매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담주려면 엄마 자신부터 건강해야 한다는 엄마의 결심이다.


어제 언니와 함께 연극 [THE FATHER 더 파더]를 봤다. 

20년 만이다. 사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그동안 우린 함께 나눈 시간도 없이 살아왔을까.

차를 마시고, 후회와 연민의 대화를 나누며 광화문과 경복궁 돌담길을 걸었다.



'더 파더'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시선과 생각으로 전개된다.

계속 시계를 찾고, 훔쳐갔다고 의심하고, 딸인 줄 알았는데, 딸도 못 알아보다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며 절규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앙드레.


그런 아버지를 책임감으로 돌봤지만 결국에 요양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는 딸의 마음,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안아주고 괜찮다고 다독거리며 '나의 귀여운 아빠'라고 가만히 가만히 노래를 불러주는 딸 안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언니는 배우의 대사가 들리지 않을 만큼 흐느꼈다

앙드레 역을 맡은 노배우 전무송 님의  당황하는 음성. 혼란스러울 때마다 떨리는 목소리, 굽은 어깨, 흐트러진 걸음걸이가 모두 우리 아버지 모습과 너무 닮았다.

연극이 아니라 진짜 삶이고, 현실이고, 치매환자를 돌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앙드레도 어린아이가 되었다.

마지막에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리 엄마에게 좀 데려다  달라며 울며 절규한다. 다 같이 울었다.  결국 남는 기억은 엄마였다.



치매는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이다.

가득 차 있던 기억 항아리에서 계속 조금씩 또는 한꺼번에 기억들이 새어 나간다. 80대, 70대, 50대, 30대, 10대ᆢ

나중에는 어린아이의 기억만 남은 환자들에겐 현재의 삶과 모습, 가족들마저 처음보고, 낯설고 당황스러운 건 당연한 거였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그분들에게도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다.

나쁜 치매로 진행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아버지가 남은 생을 상실과 분노 속에서 허우적대지 않도록 돌보는 나의 마음, 우리 가족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존경하는 마음,

지금까지 잘 살아오셨다는 증거,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과 위로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분들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고의 돌봄임을 배운다

이전 12화 어린애 다루듯 하면 안 돼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