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환자 돌봄의 태도 ]
연극 [더 파더]에서 주인공 앙드레가 새로 온 간병인에게 소리칩니다
'왜 나를 어린애 다루듯 하나요? 정말 거슬려요. 아주 기분 나빠요. 난 정말 멀쩡하다고요'.
이 장면은 영화 [더 파더]의 앤서니 홉킨슨의 연기에서도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저는 숨이 멎는 줄 알았어요. 제가 아버지께 그랬거든요.
'아버지, 양치하셨어요? 속옷은 갈아입으셨어요?'
'아버지, 아이스크림 얼마나 드셨어요? 제가 나쁘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 왜 말을 안 들으세요?
'매일 드시는 약인데, 아직도 약 드시는 걸 잊으세요?' 하면서 말이에요.
아버지는 제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으셨을까요?
쓸모없는 사람처럼 대우받는 것 같아서 얼마나 불쾌하셨을까요?
아직도 스스로 뭔가 해낼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 주길 얼마나 원하셨을까요?
알츠하이머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환자나 가족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맑고 화창한 날보다 우울하고 침울한 날들이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아버지를 통해 배우게 되었고
평범하고 별일 없이 보낸 오늘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우린 모두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거나, 아니면 앞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게 될 가족이 될 거예요
제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삶을 통해 조금 더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더 나빠지지 않을 내일을 위해 꼭 노력해야 할 몇 가지들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첫째, 평상시처럼 일상을 유지해야 해요. 그리고 애착하고 친숙한 물건을 꼭 옆에 두어야 해요.
저의 아버지에겐 자동차가 가장 애정하는 물건이랍니다. 평생 생계를 위해 운전을 하셨거든요.
지금도 차가 지하 주차장에 없으면 안절부절하세요.
조금 있으면, 이 약만 다 먹으면 이제 운전을 할 수 있을 거라며 매일주차장에 가셔서 윤이 반짝반짝 나도록 차를 닦으셨어요.
알츠하이머 환자에게는 낯선 장소, 낯선 음식처럼 새로운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익숙한 장소, 익숙한 습관 익숙한 것들을 원하지요. 그래서 돌보는 사람들은 기억해야 해요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보냈는지를.
어떤 시간을 가장 상쾌하고 즐거워하는지를.
무엇이 가장 힘들게 하는지를 말이에요.
둘째, 더 다정하고, 더 친절하세요. 비록 환자가 욕설을 퍼붓더라도요.
한 번은 순간적으로 아버지가 돌변하더니 저에게 욕을 하고, 손으로 저를 후려친 적이 있었어요.
물론 제가 아버지의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때는 아버지가 치매라는 것도 모를 때라서 막 대들고 싸웠었지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제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게 부끄럽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그분(치매 증상)이 오실 때마다 자신의 나쁜 감정과 행동을 자제하기 어려워요.
그럴 때 우린 당황하지 말고 '아, 그분(치매)이 오셨구나. 정중히 모셨다가 떠나게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해야 해요.
차분하고 부드럽게 눈을 마주 보며 이름을 불러드리세요. 말을 건네는 동안에는 손을 잡아드리면 더 좋겠지요. 그런 다음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예' 또는 '아니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거예요
"배고프세요? "라고요.
이때 반드시 중요한 것은 유치원 선생님처럼 어린아이 다루는 목소리와 말투는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되는 거 명심하세요. [더 파더] 연극과 영화에서 보셨죠!!
셋째, 인내심은 필수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최신의 기억을 잃어버려요. 아무리 가르쳐드려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셈이죠.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려고 하면 안 돼요
한 번에 하나에만 집중하고 인내심을 갖고 스스로 하실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해요.
저희 아버지는 아침마다 혈압 재는 일, 혈당 체크하는 일, 걷기 운동하고, 법정스님의 책 한 장씩 필사하기, 그리고 약 드시는 일은 스스로 하시는데요.
혈당계 작동을 잊어버려서 곰곰이 생각하기도 하고, 약속한 산책코스를 걸으려면 쉬는 시간이 더 많을 때고 있답니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헷갈려서 약장 서랍을 잘못 여실 때가 더 많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일을 스스로 성공적으로 실행하실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 드려요
속 터져서 제가 먼저 서두르면 게임 아웃이니까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성공적으로 일을 끝내시면 제가 더 신나서 "좋아요" "최고예요" "수고하셨어요" 하며 칭찬해 드린답니다.
참, 잠시 쉬시는 시간도 드려야 해요. 그래야 재충전이 되거든요.
절대 시간에 쫓기듯 서두르지 마세요.
넷째, 그분들도 다 취향이 있어요.
아버지는 제가 사드리는 옷은 다 좋아하시는 줄 알았어요. 모자도 그렇고 속옷도요.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취향도 바뀌기도 하더라고요.
요즘엔 아버지는 어두운 색보다 화려한 셔츠를 고르시고, 통 넓으면 촌스럽다고 날씬해 보이는 바지를 선호하세요. 전에는 차가운 음료는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아이스크림, 시원한 음료를 더 찾으세요.
실제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스스로 결정하거나 고르는 일이 더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꼭 여쭤보아야 해요
"오늘 오전 간식으로 두유 어떠세요? "
"분홍색 셔츠가 좋으세요? 하늘색 줄무늬 셔츠가 좋으세요?"
"산책 갈까요? 아니면 고스톱 칠까요?"
다섯째, 꼭 필요하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도와드리세요
아버지가 아프시기 전까지는 전기제품 고치거나 집안 청소는 아버지 담당이셨는데요.
지금도 화장실 타일이 떨어졌거나 제 방의 전선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땐 아버지께 부탁드려요.
세탁이 끝난 빨래를 널고 차곡차곡 개는 일, 콩나물 다듬기 등을 도와주실 때마다 얼마나 뿌듯한 미소를 지으시는지.
마지막으로, 결국 돌보는 사람이 건강해야 환자를 책임질 수 있어요.
우리는 알아요. 그분(알츠하이머 치매)이 오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요.
이 모든 돌봄의 가장 우선순위는 자신도 돌보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
돌보는 사람도 사람이니까. 당신의 건강과 행복도 중요하니까요.
슬픈 만큼 울어도 괜찮아요. 저도 그랬어요.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울었어요.
밥 먹으면서도 울고, 기도하면서도 울고, 길을 걸으면서도 엉엉 소리 내서 울었어요.
힘들 땐 반드시 도움을 청해야 해요. 다른 가족에게 무엇이 힘든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결국엔 우리의 노력으로, 지금의 돌봄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 올 거예요
장기요양 시설로 옮겨야 할 때라는 거죠.
그때가 오더라도 다만 죄책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어야 해요.
아직 저도 그 단계까지는 경험하지 못해서 저도 그렇게 할 거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분명 최선을 다했고, 알츠하이머 환자도 진심은 느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