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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Jul 26. 2023

Long Goodbye! 조금씩 천천히 안녕



새벽 3시, 자다 말고 눈이 떠졌다.

물 한잔 마시려고 방을 나서는데 식탁에 홀로 앉아 계신 엄마를 보았다.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놀라서 '엄마'하고 부르려는 순간,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뭔가를 노트에 쓰시다가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쏟아지셨던 것 같다.

나는 더 다가서지 못했다.

얼음처럼 멈춰 서서 엄마의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그저 몰래 지켜보았다.




하루하루 아버지의 알츠하이머 증상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엄마는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하루를 다 보내다 보니 많이 지치셨다.

아버지의 옷을 준비하고, 매 끼 식사와 간식을 차려드리고, 아침저녁 주무시기 전까지 약을 챙긴다.

시간마다 소변보시도록 체크하는 일,

운전을 중단하고 면허증을 반납하는 일,

통장 정리를 하는 일 때문에 매일 큰소리를 내시고 싸우기도 했다.


엄마가 집 앞 슈퍼라도 가셔서 잠시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엄마가 사라졌다고 아침부터 술을 드셔서 엄마 속을 시커멓게 태웠다.

아버지를 돌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무너졌던 엄마였다. 그래도 내 앞에선 한 번도 울지 않았던 엄마였다.


아버지가 기억을 점점 잃어 엄마도 못 알아볼까 봐 두려웠을까.

엄마가 한 시도 곁에 없으면 불안해하는 아버지 때문에 힘드신 걸까.

어제 또 엄마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신 것 때문에 마음이 무너졌을까.

새벽에 한 참을 우시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난 조용히 나와서 엄마가 쓰고 계셨던 노트를 보았다. 그건 일기였다.

엄마의 꽃밭과 자식처럼 가꾼 농작물들을 다 버리고 평창 오두막집을 떠나온 일, 내가 아버지와 도서관으로 산책한 일, 영양주사 맞은 일들이 적혀있었다.





잊는다는 것,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건 어떤 걸까.

엄마가 모든 게 사라져도 어떡해서든 추억으로 남기고 싶고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프레드릭 배크만의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라는 책을 봤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한 노인이 왜 손을 꼭 잡고 있냐고 묻는 손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




외국에서는 치매를 ‘Long Goodbye’라고 한단다.  길고 긴 이별 ᆢ현실과는 다르게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잊는다 해도 가족이어서 행복했고 감사했던 시간, 그 길고 가장 슬픈 투병의 시간을 '조금씩 천천히 긴 이별'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엄마는 이 긴 이별을 겪으면서 말로는 할 수 없던 속마음을 일기로 쓴다.

쓰면서 울고, 그리고  쓰면서 치유받고 있음을 나는 안다.


'엄마, 힘들 땐 그렇게 울어도 돼 '

나도 따라 운다. 홀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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