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의 뜰 Nov 01. 2023

나에게도 금쪽같은 조카들이 있어요.

[가시의 힘]

- 고모 –


詩 박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염할 때

사람을 헤치고 내 손 끌어다가

할아버지 한 손에 어린 손 얹어주던 고모

얘 병 좀 가져가요

그 덕인지 파랑파랑하면서도

삼십 년 더 살았다

그 고모 돌아가시기 사흘 전

다시 내 손 잡고

내가 가다 네 병 저 행주강에 띄우고 가마

나는 이제

삼십 년 또 벌었다     




이 시를 읽는데 조카를 걱정하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게 다가오던지요! 

그 조카가 살아서 이토록 짜안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으니 고모는 하늘에서도 뿌듯했을 거예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일생을 두고 기원한다는 건 정말 축복받은 일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삶이 평안하고 행복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나에게도 사랑하는 조카들이 있어요.

지금도 이십 년 전 그 아이들이 나에게 처음 오던 날을 기억한답니다. 

그의 작은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꼭 잡는 순간 얼마나 감격했던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어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어요.

  

수없이 넘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처음으로 아장아장 걷던 순간, 나는 기도했어요

앞으로 이 아이들이 시련의 파도가 쉼 없이 몰아치는 세상 속으로 나갈 텐데, 휩쓸려 넘어진다 해도 다시 일어나 주기를. 일어서서 한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아가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 주기를.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주사랑은 저보다 더하지요. 

믿는 종교도 없으면서 매일매일 기도하세요. 

평창에 계실 때는 산과 나무들에게 비셨고, 편찮으셔서 서울집으로 오신 후로는 이십 년이 넘은 아이들의 사진 액자를 애지중지 닦으면서 빌지요. 

반짝반짝 빛나는 액자 속에서 해맑은 미소, 커다란 눈동자로 할아버지, 할머니 하고 부르던 아이들의 맑은 음성이 들리는 듯해요.


하지만 나는 조카들과 함께 밥 먹고, 함께 여행하고, 함께 영화 보는 추억을 만들지 못했어요.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떠나 조카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못했는지. 그게 가장 후회돼요.

바람이나 햇볕 속에서, 달빛이나 물소리 속에서 신나게 놀고, 꿈을 이야기하며 쑥쑥 자라는 모습을 바라봐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 성인이 된 조카들에게 오십이 넘어서야 고모가 깨달은 삶의 진실을 한 가지 전해주려고 해요

'세상에 쓸모없는 일이란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다 필요하니까 일어난다는 것을요

살면서 힘든 일을 겪거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면 좌절하게 돼요. 그늘진 마음으로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내기 어렵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필요니까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정말 그렇게 돼요.

좋은 일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불행한 일은 또 그런 감정을 배우고 담대해지는 것으로 좋게 변화돼요.

진정한 전문가란 자기 분야에서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잘못을 이미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이 '필요해서 일어난 것'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아이들은 수많은 일과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그때마다 이 마음을 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면 조카들의 인생이 조금은 편안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