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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주 Apr 14. 2017

술이 보여주는 것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착하고 바른 네 동생 절대 못 따라간다."

참이슬 클래식 1병을 안주 없이 끝내버린 아버지는 심심하면 저런 식의 마음 찢는 말을 했다. 악의가 느껴질 정도의 독한 말을 술만 마시면 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설움에 복받쳐서 왜 그런 말을 일부러 하냐고 펑펑 울었다. 가끔은 악 받친 소리도 뱉었다. 그런 내 앞에서 아버지는 한 번 말씀을 뒤로 무르지 않으셨다. 본인이 내뱉으신 말에 굽히지 않으시지 읺는 그 독한 성정이 아버지 자체셨으니까. 그렇게 텅 빈 소주병이 나란한 날이면 집이 시끄러웠다. 

 어머니는 술취한 사람 말은 곧이 곧대로 듣는 게 아니라고 나를 나무랐다. 왜 그 말대꾸를 다 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집안을 시끄럽게 하느냐고 이중으로 혼쭐을 내셨다. 답답한 마음에 하는 말씀이셨겠지만 때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나를 서럽게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도무지가 어머니의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라는 말이 수용도 용납도 납득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소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아버지에게 여전히 착하고 바른 자식은 동생이었고, 공부만 잘하고 이기적인 자식은 나였기 때문이다. 변한 건 없었다. 단지 그 인식이 증폭되어 극적으로 볼 수 있는 때가 참이슬 클래식 1병 상태였을 뿐. 그 내용과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술이 센 편이 아니니 살면서 만취한 사람을 많이 겪지는 못했다. 이따금식 보는 만취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때면 그들의 본질을 목격하는 순간으로 느껴졌다. 유난할 정도로 남자들 앞에서 도도했던 친구가 있었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남자들이 다가온다던 그녀가 술에 완전히 취하니 관심없다던 남자에게 굉장히 유혹적이고 적극적인 여자가 되는 것을 목격했을 때는 그 친구에게 오만정이 다 떨어질 뻔했다.  관심도 없는 데 남자들이 귀찮게 군다는 말과 태도만 없었으면 좋았을 테다. 평소 자기 자신을 엄청난 순애보에 쑥맥으로 설명하던 동아리 오빠는 술만 마시면 스킨십이 많아졌다.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자면 일단 옆에 끼고 보려했다. 멀쩡히 혼자 집에 잘 갈 수 있는데 집은 꼭 데려다 줘야겠다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여 밀착된 부축을 하려 할 때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다음 날 술주정을 반성하고 호들갑떠는 그들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그들안에 없던 것이 술을 마셨기때문에 생겨났을까? 잠재의식속 그들의 욕망이 술이라는 통로로 비집고 나왔던 것이 아닐까?

사실 사람에 대한 환멸은 어짜피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다 우리의 구린 면을 잘 다듬어서 덜 들키게끔 조금씩 노력하며 산다. 다만 사람마다 그 밑바닥 깊이의 차이는 있기는 하다. 가끔 술의 보여주는 상대의 밑바닥에도 실망감이 일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크게 반하곤 한다. 여기쯤이면이면 이 사람의 가장 밑일 것 같은데 아 이정도면 귀여운 수준이구나- 하고 느끼거나, 이렇게 깔끔하구나- 싶을 때면 오히려 격한 감동이 느껴졌다. 그 사람이 더할 나위없이 좋아졌다. 

나 역시 술마신 흑역사가 적지 않고, 술마신 다음 날을 지독하게 후회했었던 적이 여러번 있다. 최근에는 필름이 종종 끊기지만 사실 오랫동안 기억이 안났으면 하는 부분까지 기억이 다 나는 축에 속한다. 이불킥 한참에 ,머리를 쥐어뜯고, 눈을 껌뻑거리며 어젯 밤을 후회했었다. 왜 그 때 쓸 데 없이 울었지. 왜 그 때 그 사람한테 그렇게 악담을 퍼부었지. 왜 그 때 그 사람에게 내 감정을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한거지. 왜 그랬지 왜 그랬지.

내 술주정 역시 그 모두가 내 안에 있었던 것들이었다. 술은 내 안에 이미 있던 것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감정이 강렬해지니 눈물이 나왔고, 사실 그 사람이 원래 싫었으니 악담을 퍼부었다.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한 것은 오해하게 하고 싶었으니 그랬던 것이었고. 내가 아닌 나는 없었다. 

내 안에 없던 것이 겨우 화학물질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술 마셔서 실수한 거야. 술김에 그랬어. 술이 웬수지. 하며 내뱉는 말들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다 당신안에, 혹은 내안에 있던 것이 증폭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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