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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겨울이라고 얼은 빨래가 알려주었어

겨울은 혹독하게 차가웠으나, 아버지의 사랑은 따뜻했어.

by 산토끼

띠링, 띠링.


온종일 휴대폰 알람이 울려댔다. 화면을 보니 오늘 한파주의보가 내렸으니 철저히 대비하라고 하는 재난알림문자였다. 겨울이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전원버튼을 가볍게 눌러서 화면을 껐다. 그 후 아기들과 산책을 나가서 혹독한 바람을 맞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돌아온 신랑의 모습을 보고나서 정말 한파주의보구나라고 확실히 와닿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오늘 해야할 일들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빨래통 2개를 가득 채운 빨래를 오늘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우리집에는 양말과 수건은 한 번 뜨거운 물에 삶아서 세탁을 하는 규칙이 있다. 물론, 우리집에서 빨래는 나 혼자 하는 작업이므로 나 혼자만 그 규칙을 지키고 있다. 그런 이유로 양말과 수건은 한번에 모아서 빨래하는데, 며칠을 모으다 보니 꽤 많이 쌓여버렸다. 더 미룰 수도 있기는 하지만, 적당히 모였을 때 일을 처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큰 철제통 3개에 수건과 양말을 골고루 분배해서 넣고 주방싱크의 핸들을 열어 물을 채웠다. 수건은 물을 잘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물이 통에 가득찬 후 잠시 그대로 두어 상태를 지켜본다. 역시! 물이 모자라는군! 물을 그릇에 받아 통 안에다가 더 부어준다. 찰박하게 수건위로 물이 차오른다. 가스렌지 3구를 모두 차지한 삶음통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물은 끓어오르기까지 약 4J(Jul)의 많은 에너지를 요하므로, 삶은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이 틈을 이용해 아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자! 아기옷에서 돌돌 말려있는 팔과 다리의 끝부분을 역방향으로 풀어 쭉 펴준다. 그래야 구석구석까지 깨끗하게 빨래를 할 수 있다. 아기옷은 가능한 찬물보다는 ‘아기옷’코스를 선택해서 40도 정도 되는 따뜻한 물에서 빨아준다. 왜냐하면 아기들은 어른들보다 여러 가지를 많이 흘리는데다가, 아기니까 면역이 약해서 옷을 더 깨끗하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돌이세탁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세탁하는데 시간이 걸리겠느냐, 맞추어보아라.’라고 하는 듯 계기판에 막대기모양의 불빛이 컨베이어벨트처럼 사각형을 그리며 돌아간다. 얼마간의 측정시간이 끝난 후, 1시간 54분 정도 걸린다고 확신을 하듯 숫자가 떠오르고, 세탁기에서 신나게 물을 붓는 소리가 난다. 물이 다 받아지고 힘차게 세탁을 시작하려는 차에 ‘일시정지’를 누르고, 아기옷을 잠시 불려준다. 아기옷에는 여러 가지 말라붙은 찌꺼기들이 많이 붙어 있기 때문에 불림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기옷을 모두 세탁하고 나서, 삶음이 끝난 수건과 양말도 세탁기에 돌린다. 바로 빨랫줄에 널면 좋을텐데 우리 아기들은 내 시야밖에서 참 많은 저지레를 하므로, 빨래를 조금 있다가 널기로 하고, 베란다에 둔다. 쿰쿰한 냄새같은 게 나는 건 용서할 수 없으므로,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이 때는 몰랐는데, 아기들을 재워두고 밤에 빨래를 널러 와보니 아주 추운 날씨라서 빨래가 얼어버렸다. 오? 빨래통에서 빨래를 들어올리는데, 원래 알던 그런 촉감이 아니라 냉동실에서 막 꺼낸 마른 오징어 같은 뻣뻣함이 있었다. 손의 열기로 살살 녹여서 펼치면 어떻게든 펴지긴 하지만 한계는 있었다.


우와, 진짜 겨울이구나!


손을 호호 불며 빨래를 널다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후리스와 양말을 하나씩 더 입고 신었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어서 베란다 문을 닫았다. 생각이 난김에 세탁실 문도 닫으러 다녀왔다. 세탁이 끝나면 환기를 위해서 문을 열어두는데, 오늘밤은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얼은 빨래를 모두 널고 나니 널려 있는 빨래의 모양이 우스꽝스러웠다. 내일이면 마르겠지.

내가 어렸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토끼가 그려진 내 겨울티셔츠를 손빨래해서 마당에 있는 빨래줄에 널어주셨는데, 그날 밤에 티셔츠가 꽁꽁 얼어버렸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 광경을 보고 토끼가 얼었다며 엉엉 울었다. 아버지는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며 나를 달래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겨울이 생각보다 깊어서, 그 토끼가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며칠이 걸렸었다. 정말로 시간이 약이긴 했다. 얼은 빨래를 보니 어린 날의 추억과 식구들끼리 모두 한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청하던 따뜻한 온도가 생각난다. 그리운 그 시절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기는 어려우나, 모쪼록 모두 각자의 공간에서 따뜻한 겨울밤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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