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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그 떨림과 짜릿함에 관하여

무대 체질이던 어린시절부터 PPT가 일상이 된 지금의 나까지

by wordsbyme

어린시절, 나는 실전에 강한 무대체질이었다. 한참 바이올린을 배울때도, 왠지 모르게 학예회 무대에 서면 더 자신감이 붙어서 평소보다 잘했다. 관중의 주목을 받는다는건 두려운 일이기도 했지만, 잘 마무리했을 때의 성취감은 몇배의 짜릿함이 있다는걸 어릴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일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발표를 하고 내 생각을 말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던것 같다. 조별 과제를 해도 난 기꺼이 발표를 도맡아 했고, 그 짜릿함을 즐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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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짬이 늘어서인지, 취준을 시작했을때도 면접에 대한 부담감은 거의 없었다. 왠만한 질문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고, 부담감도 많이 없었던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과한 자신감이 독이 된 것일까, 나는 항상 최종 면접에서 아쉽게 탈락하길 반복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렵게 입사 후 나를 괴롭게하던 상사가 매번 팀 회의때마다 갖은 이유를 붙이며 망신을 주는 바람에 나의 자신감은 점점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평생을 자신감있게 발표하던 나에게, 기나긴 슬럼프가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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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도 했고, 악명높은 상사는 1년만에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런데도 내 발표 자신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어쩌다 큰 발표를 하게되면 예전과 달리 목소리가 떨렸고, 작은 질문에도 당황하며 버벅거리기도 했다. 내 안에 스스로 틀을 만들고, 옥죄는 기분이었다. 예전의 발표 잘하던 나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직무 특성상 발표는 나에게 피해선 안되는, 꼭 필요한 스킬이었다. 원래 이런 문제는 복잡한 생각보단 부딪혀 보는게 답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왠만한 발표는 도맡아하며 두려움과 맞서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십개의 눈이 나만 보는것 같은 생각에 식은땀이 나기도 했지만, 어느순간 내 발표에 온전히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숨쉬는 타이밍까지 적어뒀던 스크립트는 과감히 버리고, 발표 자료를 몇번씩 돌려보며 자연스럽게 대화하듯 말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점점 이 모든 과정이 익숙해지자, 발표하는 내 목소리에는 떨림대신 자신감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무대체질 꼬맹이에서 발표공포증까지 겪으며 느낀점은, 두려움은 마주하고 깨부쉈을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무섭고 어려울지 몰라도, 하나씩 과감히 마주하다보면 어느새 두려움은 성취의 쾌감으로 바뀐다. 2022년, 나는 이제 또 다른 두려움들을 쾌감으로 하나씩 바꿔나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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