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커가 뜬 후 느낀 환희와, 거래를 마친 후 느낀 묘한 죄책감에 관하여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포켓몬 빵이 출시되었다. 학교 끝나고 포켓몬 보는 재미에 살았던 시절인지라, 포켓몬 스티커인 띠부띠부실이 들어있는 포켓몬 빵은 인기 만점이었다. 스티커로라도 151마리의 포켓몬을 모두 모아서, 주인공 지우처럼 포켓몬 마스터가 되고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한살한살 나이를 먹으며, 나와 비슷한 또래의 "포켓몬 세대"는 어느새 띠부띠부실을 잊어가고 있었다. 한때 열정을 가득 담아 모았던 스티커는, 집 구석에 고이 잠들어있거나 이사하며 버려지곤 했다. 그러다 2022년, 뜬금없이 포켓몬스터 빵이 재출시 되었다. 그것도 띠부띠부실과 함께.
추억에 젖은 30대부터, 피카츄를 좋아하는 10대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띠부띠부실을 다시 모아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포켓몬 빵 대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편의점 입고시간에 맞춰 방문해 막 들어온 포켓몬 빵을 사댔다. 유튜브에는 띠부띠부실을 전부 모으는 컨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금방 사그러들줄 알았던 인기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있다. 아직도 당근마켓을 비롯한 중고거래 커뮤니티에는 띠부띠부실을 5~6천원에 거래하는 글이 수두룩하다. 빵이 1500원인걸 고려하면 엄청난 프리미엄이다.
다른 열정맨들처럼 빵을 찾아 방방곳곳을 누빌 자신은 없었지만, 나도 추억이 있는지라 한번 빵도 먹고 스티커도 모아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기회에, 집 근처 마트에서 포켓몬 빵을 토요일 오후 2시에 판매한다는 예고(!)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깟 포켓몬이 뭐라고, 토요일 오후 1시 30분에 나는 마트를 방문했다.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못사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하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나는 빵을 손에 넣었다. 맛있게 빵을 먹고, 리자몽과 야도란이라는 나름 레어한 스티커를 얻기도 했고.
난 이성적인, 그리고 돈에 미친 새.. 아니 사람이기때문에, 이 레어 스티커를 바로 당근마켓에 올렸다. 레어한 두개 스티커 외에 다른 3개의 평범한 스티커를 묶어서 올렸는데, 왠걸, 전부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밤 10시에만 거래가 가능하다는 의문의 구매자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나는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을 가득 안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사실 거래가 성사되었을때부터, 묘하게 쿨하지만 어린느낌이 나는 그의 말투를 보며 어린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긴했다. 하지만 늦은시간에 거래를 한다는 점, 그리고 스티커 5장에 2만원이라는 거금을 쓴다는 배포를 보며 그래도 성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근데 왠걸, 약속장소에서 서성이는 사람은 딱 봐도 초등학교 4~5학년 정도로 보이는 "잼민이" 한명 뿐이었다. 조심스레 "당근이세요"라고 물어보니, 맞다는 그의 말에 나는 급격한 현타에 빠졌다.
스티커의 상태와 숫자를 확인하고, 주머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2만원을 내 손에 쥐어준채 유유히 떠나는 그 어린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7500원에 사서 맛있게 먹고 남은 스티커를, 저런 꼬맹이한테 2만원에 판거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집에 오면서도 그가 건낸 만원짜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미 받은 돈 다시 돌려줄수도 없으니, 그 아이가 재벌가의 손자일 수도 있다는 말도안되는 상상을 해보기도하고, 어쩌면 154마리를 다 모아서 더 큰 돈에 되팔수도 있다는 가설을 세워보기도 했다. 그래도 뭔가, 어린이 코묻은 돈 뺏은것 같은 느낌은 지우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작은 2만원으로 맛있는걸 사먹겠다는 계획은 잠시 접어두고, 브런치로 내 죄책감을 먼저 고해성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글을 쓰다 다시 든 생각은, 그 아이는 내가 준 리자몽에 2만원 이상의 행복감을 느끼며 잠들고 있지 않을까. 맞다, 난 그 아이에게 스티커 이상의 행복을 준것이니 괴로워하지 않아도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글을 마무리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