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이 가져오는 슬픔과 후회에 대한 이야기
1. 익숙했던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만큼 적응하기 어려운 게 있을까.
나름의 인생사를 겪은 30대이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설사 그 누군가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아닐지라도, 이별은 다시금 그가 내 삶 곳곳에 치고 들어왔던 순간을 기억하게 한다.
2. 한참 바쁘게 일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큰외삼촌의 부고를 들었다. 그 갑작스러움 때문이었을까, 내가 마주한 당장의 바쁜 일상에 큰 파동은 없었다. 그 순간, 나에겐 당장 보내야 할 메일과 처리해야 할 업무가 더 우선이었다.
물론 부고를 마주한 그 찰나의 순간, 그가 어린 나를 귀여워해 주고 괜스레 못된 장난을 치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역시 찰나였다. 이미 충분히 바쁜 나의 일상에, 그가 떠난 돌아올 수 없는 긴 여정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감정이라 생각했다.
3. 찰나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 후, 내 일상은 다시금 평온을 되찾았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짐을 정리하고, 장례식장을 향한 먼 길을 떠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누군가를 향한 슬픔보단 개인의 삶에 대한 피로함이 더 앞서있었다.
못된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미 충분히 복잡한 내 삶에 도의적 괴로움이 더해진다는 생각도 했다. 맞다. 나는 이미 빠르게 스쳐 지나간 그와의 추억을, 내가 마주한 현실을 무기로 무마해보려 하고 있었다.
4. 퇴근길의 지옥철을 지나, 피 같은 택시비를 내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도착 후, 익숙하지만 낯선 사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 뒤 영정사진을 마주했다.
낯설었다. 아니, 사실 현실감이 없었다. 몇 년간 어머니를 통해 외삼촌이 신장 관련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근황을 들어서인지, 더더욱 낯설고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들은 그의 고통이 무색할 만큼 영정사진 속 그는 누구보다 환하고 온화하게, 어린 나를 괴롭히던 장난스러운 표정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5. 부고를 들은 뒤 9시간 만에, 나는 내가 느낀 슬픔이 결코 찰나의 감정이 아님을 깨달았다.
온화한 미소와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가득한 그의 영정사진을 보며, 나는 잊고 있던 큰외삼촌과의 작은 추억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는 내가 훌쩍 자란 후에도, 잼민이었던 나에게 걸던 시시콜콜한 장난을 똑같이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대단했던 건, 머리가 컸단 이유로 잔뜩 심통난 나의 반응을 영정사진의 그것과 똑같은 미소로 웃어넘기던 어른이었다는 점이다.
6. 그리고 내가 애써 부정하던, 슬픔이 몰려왔다. 너무나도 나약하게도, 외삼촌과의 작은 추억들이 마치 내 삶의 중요한 이벤트였던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삼촌과 가장 많은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 사촌 형들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