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늙은이 소리를 밥 먹듯 듣던 아이의 철듬 역행 기록
내가 동네 어른들에게 가장 자주 듣던 말 중 하나였다. 또래 대비 책 읽는걸 좋아하기도 했고, 상대적으로 얌전한 기질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였던것 같다. 그리고 이 말은 항상, "OO이 엄마는 좋겠다, 벌써 다 키웠네"와 같이 어머니에게 옮겨갔다.
이런 말들은 나에겐 또래와 다르다는 우쭐함을, 그리고 어머니에겐 교육을 잘 시킨것 같다는 만족감을 줬던것 같다. 그래서인지 우리 어머니는 이내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고 잘 울지 않는지 이야기를 했고, 나는 보란듯이 책을 꺼내 읽는 얌전함(?)을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칭찬에 따른 반복적인 철든 행동을 통해, 나는 애늙은이가 되었다.
물론, 단순히 "난 달라"에서 비롯된 우쭐함만이 애늙은이를 만든건 아니었을 것이다. 타고난 성격도 있었을거고, 또래보다 책을 많이 읽으며 염세적인 성향이 다소 일찍 발현된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사람에겐 언제나 최적의 시점이 존재한다. 마치 과일에도 제 철이 있듯, 사람에게도 철이 없어도 되는 시기는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기를 놓쳤다. 철 없이 뛰놀 시기엔 애늙은이 놀이를 했고, "언제 철들래" 소리를 들을 시기엔 혼자만의 고민을 풀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기대는건 철 없는 짓이라고 스스로 규정짓고,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아둥바둥하며 "철 없어도 되는 시기"를 흘려보냈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철이 든척 한거지 사실 나는 지독한 자만심에 빠져있었다. 친구들이 뛰놀때 책을 읽던 애늙은이 꼬마처럼, 나는 나이를 먹고도 "세상에서 나만 철든 사람이다"라고 외치며 우쭐거리고 있었다. 때론 누군가에게 기대고 도움을 바라는게 죄가 아님에도, 철 든척 살아가는 나는 그걸 모르고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긴 이야기지만, 지금의 나는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 어릴 땐 무심한척 했던 귀여운 동물이나 캐릭터도 눈에 들어고,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표정 속엔 조금씩 다채로움이 깃들고 있다. 실 없는 농담을 던지고 깔깔 웃고, 괜시리 토라진척 연기를 하기도 한다.
이젠 철 들었다-라는 소리를 더 들어야 하는 나잇대지만, 지금의 이런 변화들이 난 썩 나쁘지 않다. 결국 철 든다는건 제 밥값하고 남한테 피해주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사회적으로 내 몫하며 눈치 덜 보고 사는 지금의 내가 어린시절의 애늙은이보단 행복해보인다. 뭐, 이러고 내일 출근하면 또 철든척 살아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