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서 얘기라 설득력은 떨어지겠지만 사실 이화령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쓸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상상 속 이화령이 더 높았다. 그리고 훨씬 길었다. 워낙 주사 맞는 순간보다 맞기 전이 더 무서운 법. 불정산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내 상상 속 이화령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자전거를 끌고 넘을 준비. 뒤처질 준비. 그래도 끝까지 올라갈 준비.
다시 출발. 며칠 자전거를 안 탔더니 몸이 찌뿌둥했다. 아마 다들 같은 기분이었을 거다. 달팽이 선생님은 차로, 나와 학생들은 자전거를 몰기 시작했다. 얼마나 갔을까. 지금은 폐역인 불정역 방향으로 가는데 산허리에 두껍게 깔린 아니, 두껍게 걸친 안개가 보였다. 구름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 선물 같은 풍경이었다. 다른 세상을 향해 달리는 것만 같았다. 차 타면서 봤으면 입 벌리고 있었을 텐데 자전거라 못 했다. 우리는 그 풍경을 향해서 미끄러지듯이 들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정말이다. 무슨 각본을 짠 것처럼 바로 그 순간. 내 바로 앞에서 달리던 학생이 멈춰 서기 시작했다. 설마. 여태껏 잘 달리다가 하필 이화령을 앞에 두고 설마. 뒷바퀴를 살펴봤다. 역시나. 바퀴가 납작해져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뒤에 사람이 있는 걸 잊었다는 듯이, 풍경에 홀린 것처럼 직진 중이었다. (첫날이 떠오른다.) 나는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았다. 달팽이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차로 앞서 간 무리들을 따라잡아 세우신 후 우리 쪽으로 유턴. 달팽이 선생님은 사실 이런 순간을 미리 대비하고 계셨다. 나도 알고 있었고. 선생님은 차 뒤 캐리어에 실린 자신의 자전거를 내렸다. 그리고 뒷바퀴를 빼서 그 학생의 뒷바퀴와 바꿔주셨다. 바퀴 크기가 모두 동일했기에 가능했던 일. 이걸 이 순간에 써먹게 되다니. 선생님은 다시 차를 타고 출발하셨고 우리 모두는 합류했다. 다시 출발. 다행히 얼마 안 가서 지나는 길에 자전거 수리점이 있었다. 딱 봐도 그 자리에서 최소 20~30년은 지키고 있었을 것 같은 모습. 주인 할아버지께서 솜씨 좋게 바퀴 수리를 해주셨다. 바퀴에서는 녹슨 대못이 나왔다. 어쩐지.
바퀴를 다시 바꿔서 낀 후에 이화령을 향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비 소식까지 있었고 중간에 살짝 내리는 듯해서 우의도 준비해놓기는 했다. 고개를 넘어가기 전까지는 비가 안 내리면 좋겠는데. 문경새재 입구를 지났다. 이제 이 고개만 넘어가면 충청도다. 이화령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