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냇가에서 노는 소리가 들렸다. 가재를 잡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글들은 쓰고 노는 거야? 가서 한소리를 하려다가 말았다. 그래. 언제 또 저렇게 놀아보겠나. 글이야 나중에 쓸 수도 있지만. 가재 잡기라니.
어릴 때 나는 겁이 많아서 가재를 한 번도 못 잡았다. 잡아보겠다고 돌을 들춰본 적은 있지만 허사였다. 가재가 눈앞에 나타났어도 아마 못 잡았을 거다. 나는 '가재구나...' 하면서 멀뚱멀뚱 쳐다봤을 테고 가재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줄행랑을 쳤을 테니. 나이를 먹으면서 가재 잡기 기억은 점점 잊혔다. 잡을 일도 없었고 마주칠 일도 없었다. 그런 요즘 같은 때 가재 잡기라니. (하기사 어떤 학생들은 학교 뒷산에 가서 뱀을 잡아온 적도 있는데 가재 정도야...) 그래. 좀 더 놀아라. 잔소리는 이따가 놀고 오면 해야지.
아이들이 가재를 잡던 곳은 불정산에 있는 불정자연휴양림. 이곳에서 이틀째를 보내고 있다. 달팽이 선생님께서 제안해 주신 숙소였는데 워낙은 2박만 할 계획이었다. 선생님께서 하루 더 묵자고 하셨는데 숙박비가 워낙 쌌고 날짜를 세어보니 하루 더 묵어도 목표 달성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말이다.
이곳에서 맞이한 첫 아침에는 아이들을 굳이 깨우지 않았다.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게. 자전거여행의 중반을 건너고 있었고 이화령을 넘기 전 힘도 비축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글쓰기! 그 많은 글들을 언제 다 쓰려고. 비성수기라서 휴양림은 한산했다. 숙소 아래 작은 계곡은 학생들 목소리,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휴양림에서 맞은 두 번째 날 이른 6시쯤에 깼다. 난방을 틀어둬서 바닥이 뜨거웠다. 아직 다들 곤히 자고 있었다. 실내는 아직 어두웠고 공기는 답답했다. 시원한 공기가 필요했다. 적당한 빛도. 씻고 난 후 아이들의 여행 노트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여행 일기들을 하나씩 읽어 봤다. 이 기록들이 이후 하나로 묶일 터였다. 오늘 던져줄 단상 주제도 궁리했다. 여태껏 제시한 것들은 시작, 인사, 고개 이렇게 세 가지.
여행을 가면서 책을 한 권 갖고 갔다. 김영하 작가가 쓴 <여행의 이유>라는 에세이. 이미 두 번 정도 읽었고 여행 도중 한번 더 읽으려고 또 챙겼다. 읽으면서 했던 생각. 같은 상황이라도 작가가 보는 시선, 작가가 갖는 생각은 다르구나. 나라면 무심코 넘겼거나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황들인데 글로 이렇게도 풀어낼 수 있다니.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표현. 내 머리에 그대로 새겨진 문장. 책표지 뒷면에도 적혀 있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나는 특히 '일상'이라는 단어에 꽂혀 버렸다. 우리가 돌아갈 일상이 없다면 이 여행은 여행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돌아갈 일상이 없다는 것은 이 여행길 자체가 일상이 되어버린다는 뜻이니까. 나를 받아줄, 내가 돌아갈 제자리가 없다면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릴 테니까. 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주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 나는 '일상'을 그날의 단상 주제로 잡았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에게 주제를 제시했고 10분 동안 산책 시간을 주었다. 학생들은 숙소 주변을 오가면서 '일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고 믿고 있)다. 시간이 되어 학생들이 모였고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들을 노트북을 이용해 받았고 글로 적었다. 그래도 주제에 대해 풀어서 설명을 해서 그런지 그래도 제법 괜찮은 생각들이 흘러나왔다.
나도 돌아갈 일상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생각이 한 가지 더 있다. 그 돌아갈 일상을 누군가는 또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 그게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들일 수도 있고, 그리고 내가 모르는 주변의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지키겠다고 굳이 마음을 먹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일상은 지켜진다는 것. 우리가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떠났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돌아올 일상을 살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니 우리 여행이 여러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