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다시 뒤로 돌려서. 장소는 낙단보자전거민박. 나는 막 학생들에게 안건을 하나 던지고 방을 나왔다.
안건: 국토종주 마지막 인증센터가 있는 인천 아라뱃길 코스까지 다녀올까? 아니면 원안대로 할까?
이게 무슨 소리냐고? 원래 국토종주니까 당연히 인천까지 가는 거 아니냐고? 우리 계획은 달랐다. 본래 계획은 이랬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동한 후에 서울에서부터 수원에 있는 학교 터전까지, 온전히 자전거로만 이동하기. 그러니까 최초 계획에서는 인천에 다녀올 일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달리다가 보니 몇몇 학생들은 욕심들이 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최초 계획대로 여의도를 거쳐 수원까지 내려가느냐 아니면 국토종주 마지막 지점인 인천까지 찍고 오느냐. 인증 수첩에서는 도장 2개 차이. 2개를 더 찍으면 국토종주 인증서와 메달까지 받는다. 예정보다 70km 정도가 추가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중요한 건 합의였다. 다 같이 하는 여행이었으니까. 여행 중반 정도 왔으니 논의가 한 번 필요했다. 당장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니더라도 얘기를 꺼내어 각자 생각할 시간을 줘야 했다. 가고 싶은 학생들이 한 발 물러서거나 안 가고 싶은 학생들이 한 발 물러서거나. 혹은 절충안을 찾거나. 안건을 던지고 문을 나서는데 당장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렸고 좀 더 고민을 해보자는 의견도 들렸다. 그래. 내가 원한 게 이거였어. 일단 자신들의 의견들을 꺼내야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낙단보에서 떠나면서 일단 이 안건은 접어두었다가 적당한 때 다시 꺼낼 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두 번째 논의를 할 때 완전한 합의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하고 제안을 한 가지 했다. 서울에서 2박을 하는 동안 국토종주 마지막 지점까지 갔다 오고 싶은 사람은 가고, 아니면 숙소에서 여행 글을 계속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모두가 동의했다. 절충안을 찾아낸 셈이었다.
그렇게 또 며칠을 더 보낸 후 누가 가고 누가 남는지 얘기가 다시 올라왔을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인천까지 다녀오는 쪽을 택했다. 아마도 도장을 계속 찍으면서 나머지 2개를 못 찍는다는 아쉬움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의 학생. 그 학생도 인천에 다녀오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어진 게 보였다. 나는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국토종주 종점까지 도착하면 내가 아이스크림 쏜다고. 이왕 가는 거 끝까지 가서 메달들 목에 걸었으면 하는 마음에. (솔직히 나도 욕심이 좀 났다) 덥석. 아이스크림의 효과가 이리 좋았나.
나는 아직도 그 합의의 과정이 기억에 남아 있다. 서로 자기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꺼내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고민을 했던 그 순간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던 순간들. 만약 내가 억지로 인천까지 다녀오자고 설득(의 탈을 쓴 강요)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해냈다는 자부심보다는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한 것이 더 크게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성취는 반쪽짜리가 됐겠지.
이제 고민은 끝났다. 새로운 퀘스트가 시작됐다. 아, 보너스 퀘스트인가? (성공하면 인증서와 메달 아이템이 추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