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여의도인증센터 앞
시간: 오후 5시쯤
솔직히 조금 초조했다. 나타나지들 않아서. 해는 곧 떨어질 테고. 서울 숙소로 들어가야 하는데 연락 방식은 없고.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고. 날짜는 10월 17일. 양평에서부터 서울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양평 숙소에서부터 여의도까지 70~80km 정도. 서울로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동네로 들어오는 것만 같았고, 한강을 끼고 달리니 다 도착한 것만 같았다. 자전거길도 잘 닦여 있으니 달리는 것도 문제없겠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서울은 대도시라는 것을 망각했다. 자전거길이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
첫 번째 길 잃기. 선두로 달리던 학생이 순간 방향을 헷갈린 모양이다. 한강 쪽으로 달리다가 왼쪽과 오른쪽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 있었는데 왼쪽으로 꺾는 게 보였다. 왼쪽으로 가면 구리.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것이다. 나는 맨 뒤에 있었지만 다행히 학생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불러서 그쪽 아니라고 돌려세울 수 있었다.
두 번째 길 잃기. 나는 무릎 문제로(부산에서부터 여태껏 시큰) 학생들 속도를 따라잡기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학생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뒤에서 열심히 달렸다. 서울이고 여의도인증센터까지 가면 되는 건데 달리 빠질 데도 없을 테고 말이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로. 이건 분명 학생들이다. 설마 여기서 길을 잃어? 그냥 한강 따라서 쭉 내려가면 되는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희 잘못 온 것 같아요."
"주변 건물 같은 것 좀 얘기해 봐."
지도를 열어서 확인해 봤다. 맙소사. 한강 하류 쪽으로 계속 오다가 보면 중랑천이 있는데 그 물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길 잃기. 분명히 나보다 먼저들 갔는데. 왜 내가 여의도인증센터에 먼저 도착하는데. 사실 떠오르는 구간이 하나 있었다. 여의도로 들어오는 구간에서 갈림길이 약간 복잡한 곳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방향을 잘못 잡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은 길이 통하게 되어 있는데. 왜 안 나타날까. 그렇게 기다리기를 30분 정도. 드디어 저 멀리서 일렬로 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늦었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역시나 예상대로 그 갈림길에서 헷갈린 것. 그것까지는 좋았다.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면 되니까. 혹은 물어보면 되니까. 그런데 중간에 멈춰서 어떻게 할까 한참 얘기들을 한 것 같았다. 게다가 길을 잃은 상황이라 불안함이 올라오고 판단력도 흐려진 듯했다. 왜 있지 않은가. 안절부절못할 때 결정을 내리기가 더 힘든 순간들이.
하루 동안 길을 세 번 잃은 셈. 나도 물론 걱정은 됐다. 특히나 여의도에서 학생들을 기다릴 때는 진짜 길을 잃은 것이라면 어디서 찾아야 할까, 설마 직진하다가 인천까지 간 것 아닌가 하는 상상까지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순간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길을 잃는 순간들이. 길을 잃고 헤매면서 방향을 다시 찾고, 스스로들 방법을 찾아보는 순간들이. 어려움에 처한 그 순간에 속모습들이 나오게 된다. 스스로의, 서로의 '민낯'을 꺼내게 되는 순간들. 부딪히고 갈등하는 순간들. 그리고 다시 방향을 잡는 순간들. 어려움을 겪고 견뎌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험.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순간들도 그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곤란 없이 해냈다면 그 나름의 성취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이 길을 잃고 힘 빠지고 다투던 그 순간들의 가치를 더 높이 산다. 길을 잃어야 길 찾는 법을 배우고 어려움을 겪어야 빠져나오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은 알게 모르게 그 방법들을 체득한 셈이다. 앞으로도 길을 많이 잃어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