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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프롤로그

by 서린

이 글을 시작하는 지금은 2025년 4월이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 1894년 여름. 아산 앞바다에서 큰 사건이 있었다. 일본 순양함이 청이 임대한 영국 국적의 배를 공격하여 침몰시켰고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충돌이었고, 금이 간 탑을 세우려고 하는 자와 무너뜨리려 하는 자의 힘겨루기였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는 조선이 있었다.


사실 100년도 더 지난 사건이라 나와는 큰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운명을 생각해 보면 전혀 관계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당시 일본 순양함에서 발사한 첫 포탄은 이 땅의 운명과 그 위에서 살아가던 (나의 선조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신호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17년 후 일제강점기가 시작됐고 36년 후에 해방을 맞았으며, 5년 후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3년 후 휴전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나를 포함은 우리는 지금도 그 땅 위에서 살고 있다.


시간이 길고 짧다고 말할 때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경험과 기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때 노는 한 시간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에 노는 한 시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인간으로서 100년은 까마득하고 닿을 수 없는 세월이다. 하지만 국가로서 100년은 어쩌면 너무나 짧은 세월이다.


시계에는 초침, 분침, 시침이 있다. 초침은 각 개인의 시간, 분침은 사회의 시간, 시침은 국가의 시간이라고 해보자. 초침이 바쁘게 3,600바퀴 돌아야 시침은 한 바퀴를 돌게 된다. 130년 전부터 지금까지 각 개인은 숨 가쁘게 살아왔고 이미 몇 세대를 거쳤다.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초침을 움직였고, 그 힘이 사회를 밀어 분침을 움직였고, 또 그 힘이 나라를 움직여 시침을 옮겼다. 국가의 한 시간을 1년이라고 계산하면 130시간 전은 불과 5일 전이다.


한국 근대사를 들여다보니 두 가지 커다란 사건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청일전쟁 그리고 러일전쟁. 사실 사건이라 부르기에는 규모가 크고, 우리가 보통 사건이라고 부르는 일들과는 종류도 다르다. 각기 다른 곳에서 한 방향으로 흐르던 냇물들이 하나로 합쳐 강이 된다. 강을 시내라고 부를 수는 없듯 전쟁을 사건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색함이 있다. 그래서 굳이 '커다란'이라는 표현을 넣었다. 국가의 시각에서 보자면 전쟁도 사건이라고 부를 만하다. 물론 그 안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과 이야기가 있다. 시계 속에서 보이지 않게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처럼.


그동안 듣거나 배웠던 근대사의 여러 사건들. 운요호 사건, 임오군란,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을 구슬이라고 치면 그 두 번의 전쟁은 그 구슬들을 꿰어 이어주는 실이라고 생각했다. 그 두 가닥 실을 풀어서 끝을 잡고 구슬을 하나씩 이어가다가 보면, 어떤 일들이 어떤 식으로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막연함을 천천히 걷어내 보고 싶었다.


이 글은, 그리고 앞으로 쓸 글들은 개인적인 욕심을 가득 담아서 쓰는 글들이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이다. 글로 정리를 하다 보면 근거를 명확히 찾으려고 할 것이고, 문장 한 줄, 단어 하나도 맞는지 따지게 될 것이다. 나로서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쉽게 물러서지 않게끔.


취미에 가깝기에 글을 올리는 날은 들쭉날쭉할 것이다. 취미라서 소홀히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본업을 하는 와중에 틈새를 만드는 것이라 고민이 깊지 못한 날이 있을 것이고 그런 날은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들쭉날쭉이라고 표현했다.


올렸던 글을 고쳐서 다시 올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내 시야의 한계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를 추가할 수도 있고, 마찬가지 이유로 잘못 파악한 내용이 있다면 수정하거나 빼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여기 글을 올리는 것은 식탁에 다 된 밥을 차리는 게 아니라 밥을 짓고 뜸을 들이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나는 이제 청일전쟁이라는 실타래의 끝을 잡았다. 그렇게 처음 잡힌 것이 바로 고승호(高升号/Kowshing). 일본 순양함의 공격으로 침몰한 바로 그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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