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에어팟, 헤드폰, 안마기 중 선물로 드린다면 뭐 받고 싶으세요?"
"안마기!"
나는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지 않았다. 옆에서 듣던 다른 선생님이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덧붙였다.
"기왕이면 안마 의자로!"
안마기라니. 안마 의자라니. 어렸을 때 아버지가 다리를 밟아달라고 엎드려 누우시면 우리 형제는 다리를 천천히 밟아드렸다. (이렇게 하면 용돈도 받는다!) 그때 시원하다는 말씀을 하셨을 거다. 나도 엎드려서 누군가한테 밟아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아프기만 했지 뭐가 시원한지는 몰랐다. 그랬던 내가 안마기를 찾고 있었다. 분명 시원할 거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나이를 먹기는 먹었구나.
안마가 시원하다는 말 외에 어른들한테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보통 어른들은 단 음식을 안 좋아하셨다. 왜 초콜릿이나 사탕, 과자를 안 드실까. 이렇게 맛있는 걸. 권해도 거절하시기 일쑤였고, 그 당시 나는 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해가 안 되네. 나는 어른이 돼도 단 거는 계속 먹을 거야.'
그랬던 내가 우리 집 애들이 달콤한 무언가를 권하면 고개를 흔드는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어릴 때는 단 것을 찾아서 먹었지만 지금은 찾아 먹지는 않는다. 딱 한 가지 경우에만 찾아 먹는다. 당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만. (그러고 보니 당이 생각보다 자주 떨어졌던 것 같은데...)
나이 먹었다는 증거를 속속 발견하는 순간들. 서글프지는 않다. 싫지도 않다. 나는 지금 나이 그대로가 좋다. 늙어가고 몸의 기운도 어느 순간부터는 줄어들겠지. 그렇다고 거울 보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세월이 갈수록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못하던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솔직히 즐겁다. 젊은 시절 내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이 즐겁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거니까.
어쩌면 그렇게 바로 대답이 나왔을까. 안마기라고.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유쾌하고 즐거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장난이든 아니든 그런 질문을 던져준 게 고맙다.
생각해 보니까 아주 나중에 생일 선물로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20년 후라고 했나. 그럼 2045년이니까 2044년쯤에 안마 의자 놓을 자리를 마련해 놓는 것으로 하고. 1년에 한 번씩 문자를 보내놓아야겠다. D-20년, D-19년... 이런 식으로. (음... 차단... 당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