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에만 의존해서 적는다. 20년은 됐을 것이다.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저녁식사를 했다. 반가운 만남이었고 시간이었다. 식사 후 밖으로 나와서 인도를 말없이 걸었다. 어느 정도 걷다가 그 친구가 말했다. 최근에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옆에 있으면 용기를 끌어내주는 사람도 있고, 아름다움을 끌어내주는 사람도 있다고.
나는 편안함을 끌어내주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다. 바로 그 이유를 덧붙였는데 말없이 같이 걸어도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 만남 이후 그 말이 내 안으로 많이 들어왔고 나는 무엇을 끌어내어주는 사람일까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잊고 살고 있었는데 요즘 며칠 사이 그 대화가, 그 친구의 그 말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요즘의 나는 무엇을 끌어내어주는 사람일까. 나 또한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수는 없음을 잘 안다. 앞의 질문은 내가 상대에게 끌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충족하자는 게 아니다. 누군가 혹은 어떤 상황을 대할 때 한발 뒤로 물러서기 위함이다. 내 마음을 한 번 더 살피고 상대방의 마음을 한 번 더 살피자는 마음.
솔직하게 말해서 누구든 간에 나를 통해서 좋은 것을 얻어가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심이기도 하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깊은 속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없다. 제각각 맞는 퍼즐이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제각각 맞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하더라도, 기왕이면 나를 통해 편안함이나 즐거움이 마음에서부터 끌려 나오면 좋겠다는 욕심은 버리기가 어렵고 아깝디.
말없이 함께 걸었던 그 저녁과 그 안에서 나눈 작은 대화가 이렇게 길게 남을 줄은 몰랐다.